수상집 2 '독백과 대화'
 

물욕과 명예욕을 버려라! 그러면 행복을 얻으리라.

나  운  영

   「망각하지 않고서는 행복을 얻을 수 없다.」 이것은 앙드레 모로아의 금언이다. 나는 이 말을 가지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괴로움을 잊어야만 행복이 온다. 사랑했던 여인을 잊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면 모로아는 어째서 이런 말을 했을까 생각하니 점점 머리가 도는 것만 같다.
   「망각」이란 두 글자를 놓고 다시 생각하니 건망증이란 말이 머리에 떠오른다. 약속을 잘 잊어버리는 젊은이를 보고 「그는 건망증이 심하다」고 한다. 그런데 약속을 잊어버려서 사고가 발생되는 경우를 상상할 때 이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스러운 일이니 이런 종류의 건망증이라면 도리어 부러울 정도가 아닐까? 만약에 죽도록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고 가정할 때 그를 잊어야만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니 이 또한 지극히 편리한 건망증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보면 건망증이란 불행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가령 행복에 관한 금언을 나에게 소개하라면 나는 서슴치 않고 「물욕과 명예욕을 버리라! 그러면 행복을 얻으리라.」고 말하고 싶다.
   욕망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금욕(金慾), 사업욕, 출세욕, 소유욕 등등 수많은 욕망을 요약한다면 결국 물욕과 명예욕 밖에는 남지 않을 것이니 이 두 가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욕망에는 한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기 분수에 맞게 욕심을 부리는 것은 무방할지 모르나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요행을 바라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아무리 돈을 벌려고 해도 돈이 사람을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과 같이 명예란 주어져야 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그야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교제만 하면 돈도 벌 수 있고 흔해 빠진 공로상쯤은 받을 수 있는 모양이나 자기 자신이 운동을 해서 얻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사람에는 세가지 타입이 있으니 첫째는 명예가 땅에 떨어져도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둘째로 돈은 못 벌어도 명예만 차지하면 된다는 사람과, 셋째로 돈과 명예를 꼭 같이 얻으려는 사람이다. 그런데 돈이나 명예를 바랐다가 둘 다 잃어버린 자가 얼마나 많은지 모를 지경이니 이 세가지는 모두 잘못된 인간상이라고 나는 확신하는 동시에 물욕과 명예욕을 버려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악성 바하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 매주일 칸타타 한 편씩을 작곡하였으며,  헨델 또한 침식을 잊고 24일 동안에 필생의 대작인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작곡하여 매년 이 곡의 연주로 말미암아 생기는 돈을 자선사업에 바치도록 하지 않았던가?
   요즈음처럼 상급학교에 입학시험을 치를 때 특기자의 혜택을 입기 위해 혹은 직장에서 승진하는 데 필요한―실적을 올리기 위하여 더욱이 공로상을 타기 위하여 음악활동을 하는 「진짜적 가짜」가 득실거리는 세대에 있어서 나의 금언은 그리 잘 통용이 안 될지 모르나 나 자신의 경우를 생각해 볼 때 내가 돈을 벌 욕심이 있다면 소위 유행가나 영화음악을 작곡하면 될 것이고, 세속적인 이름을 떨치기 위해서라면 지저분하게 감투나 차지하면 될 것이지만 이런 데 정신을 쓰려 들지 않고 피땀 흘려 교향악곡을 작곡하는 일과 한국적 작곡기법의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까닭이 애써서 물욕과 명예욕을 초월해 보려는 때문이기에 나는 그랜드 피아노가 없는 것을 슬퍼하거나 이웃의 자가용 자동차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돈이 많으면 도적이 들까 염려되고, 실력 없이 이름만 나면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느낌일 것이니 예인(藝人)도 요술가(妖術家)도 아닌―참다운 예술가가 돼 보고자 노력하는 나로서는 물욕과 명예욕과 같은 허황된 세속적인 꿈을 꿀 겨를도 없이 오직 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고행을 겪는 데서만 행복을 찾아 보아야겠다.

<1968. 1. 주부생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