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편편상(片片想)

나  운  영

 산과 나
   바다와 산에게 정복 당하는 취미와 그것을 정복하는 취미는 다르다. 바다와 산을 바라보는 감정과 바다와 산 속의 나를 발견했을 때의 쾌감은 다르다.
   본래 생명보험에 들기 전에는 절대로 바다와 사귈 수 없는 나는 반발적으로 산을 사랑하게 됐다. 따라서 나에게 있어서는 바다는 어디까지나 보는 그림에 지나지 않으며 산은 끝까지 오르고야 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고독을 사랑하는 나는 산에도 혼자 오르는 습관이 있다. 중학시절 안개가 자욱한 이른 새벽에 북한산 기슭 승가사(僧伽寺)를 찾아 헤매며 토끼바위를 타고 앉아 사색에 잠기던 일, 역시 비 내리는 새벽에 혼자서 북악산을 기어올라 그 봉우리에서 장안(長安)을 내려다 보며 두보(杜甫)의 애국시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를 음미하고 한탄하던 생각, 봉원사 뒷산에 다달아 일사(一死)를 각오하고 태연히 말굽바위를 타고 앉아 일종의 허무감에 사로잡혔던 생각 등을 회고해 볼 때 감개무량함을 금할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일대의 무용담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사 바꿔 부르기
     앞 바퀴 뒷 바퀴 자동차 바퀴
     앞에는 운전수 뒤에는 손님
     달려라 달려라 우리 집까지
     달려라 달려라 우리 집까지
     택시값이 얼마냐 오백환이다
     비싸다 싸게 해라 삼백환 해라
     안 된다 안 비싸다 오백환 내라

   <통일 행진곡>은 <승리의 노래>와 함께 6.25 사변 중 가장 많이 불려졌던 노래일 것이다. 나는 부산 피난 중 단간방에서 이 곡을 작곡하였는데 그렇게도 많이 불려질 줄은 미처 몰랐었다. 이 곡은 음역이 넓고 당김법(신코페이션) 리듬이 있고 해서 비교적 힘든 곡인데도 크게 유행된 것은 가사가 우수한 탓이라고 생각된다. 대체로 국민가요는 다분히 유행성을 띠고 있어 한 시기가 지나면 사라져 버리기가 쉬운 일인데 이 곡이 4.19 때나 이번의 학생 데모 때에 데모 대가(隊歌)로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역시 그 가사가 젊은이들의 피를 끓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렇게도 애국적인 김광섭(金珖燮)선생의 가사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앞바퀴 뒷바퀴」로 바뀌어 애창되고 있으니 그저 웃어 넘겨 버릴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하기야 소위 「가사 바꿔 부르기」는 비단 방송국에서 시작된 「장난」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가 중에는 한 곡에 가사만 바꿔서 부르도록 되어 있는 것이 많다. 동요, 창가, 국민가요, 예술가요 등은 먼저 가사가 있고 그 가사에 의해 작곡되는 것이므로 원 가사가 아닌 다른 가사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요 그 자체가 모순된 일이다. 글자 수만 맞는다고 해서 아무 곡에나 붙여서 부른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노릇이다.
   이러한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작년부터 합동찬송가 개편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아직도 방송국에서는 「가사 바꿔 부르기」를 히트 프로로 삼고 있고 한편 월북 작곡가의 가사로 된 노래에 새로이 가사를 만들어 붙이는 일이 유행되고 있으니 이것은 하나의 작난(作亂)이라기보다 우리의 문화수준이 낮은 것을 드러내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악취미에 속하는 「장난」이 그만 둬지기를 바란다. 「가사 바꿔 부르기」로 말미암아 작사와 작곡, 작사자와 작곡자에 대한 침해를 생각해 보라.

< 1965. 9. 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