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누워 침 뱉기

나  운  영

   「나는 한국에서 제일 가는 음악가입니다. 나 이외에는 선배도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 악단을 이만큼 이끌어온 사람이 바로 나올시다.」
   이것은 몇 해 전 우리나라 음악가가 외국에 가서 말한 멋진(?) 이야기의 한 토막이다.

   「우리나라 작곡계는 황무지와도 같습니다. 연주분야에 비해 작곡분야는 적막한 느낌을 줄 뿐입니다.」
   이것은 두어 달 전 국내 잡지에 실린 어느 음악가의 발언 내용이다. 나는 이 두 글을 놓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전자는 외국에 가서 자기 자랑을 최대한도로 늘어놓았으나 결국은 여지 없이 우리 악단을 국제적으로 망신시킨 놀라운 망언이 되어 버렸는데 그런 것을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

   자고로 제 자랑하는 사람 쳐 놓고 좀 모자라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외국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해 줄는지는 미처 생각도 못해 보고 그저 「내가 최고야」라고 떠들어댔으니 나라 망신도 유분수지 이럴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나는 외국 사람을 대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국을 대표해서 온 사람도 아니요. 나는 한국의 제1인자고 아닙니다. 내 선배나 동료, 후배 가운데 유능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나는 당신네들이 나를 보고 한국 악단의 수준을 저울질할까봐 두렵기만 합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남을 추켜 세우는 통에 나까지도 덩달아 올라가는 법이고 한편 멋진 민간외교가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후자는 우리 작곡분야가 활발치 못하다고 했는데 이것이 자기 자신을 포함시켜서 한 말인지 혹은 자기만을 빼놓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말은 작곡가를 도매금으로 깎아 내린 매련(마련)없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연주분야에 비하여 작곡분야가 뒤떨어졌다는 것을 나도 일단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연주와 작곡은 그리 간단히 비교해서 말해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 있어서 연주가는 주로 대학 시절에 배웠던 외국곡 만을 연주하고 있고, 우리의 새 작품은 거의 연주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일 뿐만 아니라 더욱이 우리 작곡가 편에서 볼 때에 연주가들은 우리 작품을 연주하는 데 있어서 그 기술과 성의가 부족해서 우리 작곡가들은 마치 고속도 촬영의 사진 모양으로 그들의 고속도 연주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니 단순히 연주는 수준이 높고 작곡은 수준이 형편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말이라 아니할 수 없지 않은가? 더구나 우리 작곡가들은 피땀 흘려 작곡해 놓고도 연주료를 물고 초대권을 뿌려 발표회를 하고 빚더미 위에 올라 앉아야만 하니 이런 모순된 일이 어디 있는가?
   자업자득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작곡가의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작곡분야를 스스로 깍아 내린다는 것은 동업 작곡가들에게 일격을 가한 데서 오는 일종의 통쾌감을 맛보기 위한 가장 졸렬한 생각일 뿐만 아니라 멸종작업을 자행하는 결과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주지 않을 수 없다. 전자는 자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고 후자는 자기를 낮추기 위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자기는 물론 우리 음악인, 우리 악단, 우리나라를 욕되게 한 것이니 한심스럽기만 하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는데 앞으로는 누구나 꼴뚜기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은 물론 「누워 침 뱉기」와 같은 일이란 죽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 1969. 1. 주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