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우월감과 열등감

나  운  영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너무 태운 것은 흑인이고, 설익은 것은 백인이요 알맞게 구운 것이 황인종이다」라는 농담을 가끔 듣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흑인과 백인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는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으나 일면 생각해 보면 백인에 대한 열등감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작년과 재작년에 재일교포 학생들을 위한 하계학교의 강의를 맡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 통역을 내세워서 우리말로 강의를 했다. 물론 나도 일본말로 강의를 하라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재일교포는 분명히 한국사람인데 그들에게 일본말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내 자존심을 꺾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음악에 대한 강의를 했지만 그보다도 한국의 얼을 그들 마음 속에 심어 주고 싶었다. 통역을 내세워서 한 나의 강의가 그들에게 비록 적지 않은 불편을 주었을지 모르나 「모국에 갔더니 한국말로 강의하는 선생이 꼭 한 사람 있더라」고 하는 이야기가 퍼진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과 위안을 받게 된다.
   나는 그들에게 퀴리 부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즉 그는 깊은 밤에 이불 속에서 그의 자녀에게 몰래 몰래 폴란드 말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야기다. 이 밖에 인도 사람들은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반드시 그들의 옷을 입고 다닐 뿐만 아니라 자기 나라 말을 쓰고 자기 나라 식대로 음식을 먹는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인도 사람이야말로 민족적인 긍지를 가진 우수한 민족의 하나로서의 본보기라 할 수 있다. 내가 재일교포 학생들에게 통역을 내세워서까지 우리말로 강의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또한 그들에게 우월감과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 주었다. 즉 「당신들은 혹시 우리 모국 학생들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일본 학생들에 대해서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물론 우월감과 열등감은 정반대의 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 두 가지 생각을 다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동양사람은 서양사람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고 있는 듯하며 한편 같은 동양사람 가운데서도 우리는 중국사람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고 일본사람에 대해서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지나 않을까? 혹은 이와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무엇보다도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된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든지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항상 앞장서는 버릇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의 시기, 질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시기, 질투야말로 열등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도리어 시기, 질투를 받는 데서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도 된다. 그러나 남에게서 시기, 질투를 받는 데서 오는 우월감이건 또는 남을 시기, 질투하는 데서 오는 열등감이건 아예 이런 생각은 하지도 말자. 그보다도 우리는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문화수준이 어디쯤 도달해 있는가? 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가?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해서 내가 연구하는 과제가 비단 국내의 학계에 기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크게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겠다는 긍지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나 자신 항상 느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생각을 학생들에게도 심어 주고 싶다.

   흑인과 백인과 황인종에 대한 농담을 들을 때마다 혹은 재일교포 학생을 만날 때마다 나는 우월감과 열등감이란 이 두 말이 항상 생각나면서―오직 확신을 가지고 나의 길을 가야겠다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 1969. 3. 연세 제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