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작가 기금

나  운  영

   46세의 한 부호의 미망인이었던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와는 한 번도 만난 일조차 없었으나 그의 음악을 너무도 사랑했던 나머지 년금 6천 루불을 아무 조건도 없이 내주었던 것이다.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 작곡가인 잔 시벨리우스는 국가에서 호반에 별장을 지어 주었고 행여 작곡에 방해라도 될까 하여 그의 저택 부근에 음향관제를 실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많은 년금을 수십년간―종신토록 주었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7편의 교향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등 수많은 대작을 남겼다. 나는 차이코프스키와 시벨리우스의 경우를 생각할 때마다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심마저 생긴다. 말하자면 그들은 개인이나 국가에서 작곡기금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행복스러운 일이었을까?
   외국의 작곡가들은 이와 같이 작가기금을 받을 뿐만 아니라 국가와 개인이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위촉하고 고가의 작곡료를 지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이 완성되기가 무섭게 그 악보가 출판되고 이 곡이 연주될 때마다 사용료가 지급되기 때문에 적어도 생활에 있어서 조금도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순수음악 작곡가로서 작가기금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어쩌다가 위촉을 받게 되는 교가나 사가(社歌) 이외에는 작곡료를 받아 보는 일조차 없다. 그리고 작품이 완성되어도 악보를 출판해 주는 사람도 없고 연주해 주는 단체도 없다. 그래서 기어코 자기 작품을 들어 보려면 어마어마한 연주료를 자신이 전적으로 부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서울에 KBS 교향악단과 시립 교향악단이 있지만 정기 연주회에 우리 작품은 1년에 잘못해서 한두 번 연주될 따름이다. 더욱이 사용료란 것은 아예 지급되지도 않는다. KBS는 물론 민간방송국에서도 몇 해 전에 방송했던 녹음 테이프를 작곡자의 허락은 커녕 양해도 없이 계속 돌리고만 있으니 이 억울한 사정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와 같은 최악 조건하에서 우리는 창작에 대한 의욕마저 잃어버린 채 교단생활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작곡계의 활동이 가장 부진한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에게 소위 작곡 대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작품 쓸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느니, 「국가에서 돈을 내고 작품을 위촉하지 않기 때문」이라느니, 「작품을 써 놔도 들어 볼 기회가 없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때 나는 그들의 답변에 일단 동조하긴 하면서도 마음 속으로 많은 회의를 가졌다.
   물론 작가기금도 마련되어 있지 않고 작곡료, 사용료도 받지 못하고 또 작곡해 놓았댔자 들어 볼 기회마저 없으니 의욕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겠다. 그러나 작곡가는 반드시 누구의 주문을 받아야만 작곡하는 것은 아니다. 또 반드시 돈이 되어야만 작곡하는 것도 아니다. 꼭 연주를 들어 볼 수 있어야만 작곡하는 것인가?
   다시 말해서 작곡이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고, 누구 때문에 하는 것인가? 나는 그렇게만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즉 작곡가가 작품을 쓰는 것은 생리현상에 불과하다. 즉 쓰지 않고는 못 배겨서 토해 내는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바하는 돈을 위해서 작곡한 일이 없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생활고에 허덕이면서도 고민을 극복한 <환희의 송가>를 고창(高唱) 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악성들 가운데는 생전에 자기 작품을 들어 보지도 못하고 죽어 간 작곡가들이 허다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위대한 작품을 썼던 것이다. 굶으면서―아니 침식을 잃고 작곡에 몰두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와 같은 예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들은 우선 작곡가로서 기본자세부터 바로 잡아야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무엇 때문에 작곡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작곡해야 하는가?」를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어떻게 작곡해야 되느냐?」를 생각해야겠다. 이 기본자세가 바로 돼 있지 못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도 없을 것이고 의욕마저 생기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의 실력부족, 성의부족, 노력부족은 생각하지도 않고 일편단심(?) 불평, 불만만을 일삼게 될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있듯이 작곡가들은 우선 기본자세를 바로잡고 계속적으로 작품을 써야만 한다. 그러면 멀지 않은 장래에 우리에게도 작가기금이 주어지게 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뜻에서 나는 교향악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산고를 겪어야만 한다. 나를 비롯해 우리 작곡계는 나에게 작가기금을 달라고 자신 있게 요구할 수 있는 그 자격부터 갖추어야 되지 않겠는가?

 < 1969. 2. 16. 주간조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