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2 '독백과 대화'
 

음악인이 본 설교론
 ―보다 변화있는 설교를―

나  운  영

   저 유명한 헨델의 <할렐루야>도 그 연주법이 좋아야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과 같이 아무리 설교 내용이 좋다 하더라도 그 표현법이 좋지 못하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 정신을 경주(傾注)하여 들을 수 없게 된다.
  나로서 여러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을 때마다 몹시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좀 더 듣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해 주었으면 ... 좀 더 그 표현에 있어서 변화가 있었으면 ... 좀 더 음악적(?)이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음악인이 본 설교론을 간단히 적어 보고자 한다.

   설교와 음악은 그 표현법이 매우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음악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강약의 변화, 속도의 변화, 음색의 변화, 고저의 변화, 표정의 변화 그리고 형식의 변화가 절대로 필요한 것인데 이 모든 것은 설교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첫째로 강약의 변화가 필요하다. 너무 작은 음성으로 설교를 하면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연히 졸음이 오게 되고 또 이와 반대로 너무 큰 음성으로 설교를 하면 처음에는 긴장해서 듣다가도 머리가 아프고 차츰차츰 피로를 느끼게 되어 역시 졸음이 오게 된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무엇보다도 강약의 변화가 없는 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강약의 변화가 있어야만 때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풀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론은 보통 음성(Mezzo-forte)으로, 본론은 큰 음성(Forte)으로, 클라이막스로 향할 때에는 점점 크게(Crescendo), 클라이막스에서는 매우 크게(Fortissimo), 그리고 클라이막스 직후부터는 점점 작게(Diminuendo), 결론은―열정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매우 크게(Fortississimo), 심각한 표현에 있어서는 매우 작게(Pianissimo) ...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강약을 조절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둘째로 속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너무 빠른 설교는 내용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으므로 듣긴 들어도 잘 알아들을 수가 없고 또 그 반면에 너무 느린 설교는 긴장이 풀리고 잡념이 생기게 되므로 감동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예를 들면 서론은 느리게(Andante), 본론은 보통 속도(Moderato)로, 클라이막스로 향할 때에는 점점 빠르게(Accelerando), 클라이막스 직후부터는 점점 느리게(Ritardando), 결론은―열정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빠르게(Allegro), 심각한 표현에 있어서는 느리게(Andante) ...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셋째로 음색의 변화가 필요하다. 본시 타고난 음성이 나쁜 경우라도 발성법을 연구하면 음색은 매우 좋아질 수 있는 것이나 미끈하고 부드러운 음성보다도―부흥목사님과도 같이―목쉰 컬컬한 음성에 더 큰 매력(?)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니 좋은 음성이건 나쁜 음성이건 그것 자체보다도 역시 그 변화가 문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서론은 어둡게, 본론은 보통 음색으로, 클라이막스로 향할 때에는 점점 밝게, 심각한 표현에 있어서는 어둡게 ...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음색을 조절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넷째로 고저의 변화가 필요하다. 물론 이것은 선율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나 역시 고저의 변화만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예를 들면 서론은 낮게, 본론은 보통 높이로, 클라이막스로 향할 때에는 점점 높게, 클라이막스 직후부터는 점점 낮게, 결론은―열정적인 표현에 있어서는 높게, 심각한 표현에 있어서는 낮게 ...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고저를 조절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다섯째로 표정의 변화가 필요하다. 너무 유우머러스한 설교나 또 반대로 점잖은 설교는 그 변화가 없는 데 있어서는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예를 들면 우스운 이야기는 유우머러스하게, 대화조(對話調)는 정말로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는 듯이 말하는 등 ... 이와 같이 자유자재로 표정을 조절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여섯째로 나는 형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일 강조하고 싶다. 소위 설교학에서는 제목 설교, 본문 설교, 주역 설교 등등으로 논하고 있는 모양이나 이것은―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막연한 감이 적지 않다.
   여기서 잠깐 음악형식에 대해서 설명한다면 음악에는 변주곡 형식(Variation form), 론도 형식(Rondo form), 소나타 형식(Sonata form) 등이 있다. 변주곡 형식은 어떤 하나의 주제(Theme)를 여러 가지 각도에서 변화시키면서 설명하는 것이고, 론도 형식은 역시 하나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하여 주제(A)와 주제 사이에 이것과 대조가 되는 삽입악구(揷入樂句)(Episode―B, C, D등)를 넣어 A+B+A+C+A+D+A식으로 설명하는 것이며, 소나타 형식은 먼저 서로 성격이 다른 두 주제(제1주제와 제2주제)를 제시한 다음에 이것을 부분적으로 발전시켜 나중에 해결 짓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마치 작곡가가 먼저 곡의 종류, 내용, 또는 동기(Motive)나 주제(Theme)의 성격에 따라서 악곡의 형식을 결정하는 것과 같이 설교자는 예배의 성격에 따라서 듣는 사람들의 수준에 따라서 또는 설교 제목에 따라서 설교형식을 결정해야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천편일률적으로 한 가지 형식으로만 설교할 것이 아니라 자유자재로 그 형식을 변화시켜 조절할 수 있어야 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강약, 속도, 음색, 고저, 표정, 형식의 변화에 대해서 논하였으나 이것은 결코 설교 내용보다도 그 표현법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물론 무엇보다도 먼저 설교 내용이 충실해야 될 것이나 아무리 그 내용이 좋다 할지라도 만약에 그 표현법 자체에 결함이 있다면 절대로 만족할 만한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뿐이다. 「충실한 내용에 변화 있는 표현」―이것이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항상 안타깝도록 느껴지던 문제이다. 빌리그레함 박사나 피얼스 박사의 설교가 우리에게 많은 감격과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설교 내용이 우수한 점에도 있을 것이나 이에 못지 않게 그 표현법이 일치되는 까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설교자는 무엇보다도 듣는 사람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해야 할 것이다.」
「설교는 강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설교는 경우에 따라서 그 표현법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 1958. 9. 신학논단 제4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