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민족의 노래...길이 길이
홍난파 선생 30주기에 붙여

나  운  영

   한국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우리의 악성 홍난파 선생은 관현악지휘자, 작곡가, 음악교육가, 음악평론가등 음악 전반에 걸쳐 문자 그대로의 선구자였을 뿐만 아니라 창작소설을 비롯하여 번역소설 역가, 작가 등을 수 없이 남겼으니 놀랍게도 문필가를 겸했던 천재였다.
   그러나 나는 선생의 이 모든 업적 가운데 작곡활동을 가장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백여곡이 넘는 동요를 작곡하였기 때문에 단지 동요 작곡가로만 알려져 있는 듯 하나 이밖에도 「조선가요 작곡집」과 바이올린 독주곡,  관현악 조곡  등이 있으니 기악곡까지도 작곡한 한국 최초의 대 작곡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조선가요 작곡집」은 영산 시조에 작곡한 15편인데 대체로 소 3부분형식으로 되어 있으나 간주가 한번 또는 두 번 들어있어 분명히 동요나 창가에서 벗어난 가곡으로서 예술 가요의 냄새가 은근히 풍기는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금강에 살으리랐다>, <봄 처녀>, <장안사>등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선생의 작품에서 민족적 향기를 맛볼 수 있다. 생각컨대 한국에서 정경화 같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나왔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홍난파선생 이래의 전통이 계승되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생의 바이올린 연주가 정경화 양에 의해 계승된 것과 마찬가지로 작곡에 있어서도 선생의 뒤를 따를 만한 천재가 나와야겠다.
   홍난파선생의 30주기를 맞이하여 우리는 작곡가로서의 선생을 재 인식하는 한편 그 유업을 계승함으로써 음악 중진국으로서의 힘찬 새 출발을 다짐해야겠다.

 <1971. 8. 28 서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