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두와 뇌

나  운  영

   나는 두뇌(頭腦)란 글자를 둘로 나누어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즉 무엇이나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은 두(頭)가 좋은 사람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는 사람은 뇌(腦)가 좋은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그렇다면 두는 기억력을 말하고, 뇌는 사고력을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16직후엔가 객관식 입학시험을 치르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에 연필을 굴려서 합격된 사람이 더러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은 사고력, 이해력만을 테스트하는데 있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주관식 출제는 객관식 보다는 기억력을 주로 테스트하는 결과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억력이 좋지 못하면 절대로 답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출제에 있어서 주관식과 객관식을 놓고 다시금 생각해 볼 때 주관식은 두에 중점을 둔 것이고 객관식은 뇌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세상사람 중에는 두와 뇌가 모두 좋은 사람은 없고 두는 좋으나 뇌가 나쁜 사람, 반대로 뇌는 좋으나 두가 나쁜 사람이 많은 것을 볼 때마다 내 나름대로 두와 뇌를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만 같다.     학창시절에 시험 전날 밤새워 외운 것은 시험을 치르고 교실을 나오기가 무섭게 깨끗이 잊어 버리기 때문에 비록 학업성적은 좋게 나오지만 졸업한 뒤에 크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런 사람은 두는 좋지만 혹시 뇌가 나쁜 탓이 아닌가 생각하며 반대로 평소에 꾸준히 공부하던 사람은 설사 자기가 공부한 것이 나오지 않아 학업성적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더라도 사회에 나가 성공하는 사람을 흔히 볼 때 이런 사람은 두는 나쁘지만 뇌가 좋은 탓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시험을 주관식과 객관식을 섞어서 출제해야만 학생의 두와 뇌를 골고루테스트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여기서 두 가지 실례를 들어 보기로 하자. 한국신학대학 학장이며 서울 성남교회초대 취임목사였던 고(故) 송창근 박사님은 그 많은 교인의 이름과 얼굴을 모조리 외우셨다. 그 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모든 사정을 알고 있어 그들을 위해 늘 기도해 주셨으니 그 두가 너무나도 좋은데는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예는 나의 경우인데 5.6년전 중 고등 교사를 위한 하기강습회가 열렸을 때 나는 매일 7시간씩 3일간의 집중 강의를 강행했는데 이 때에 강의 노트 커녕 종이 한 장 가진 것 없이 교실에 들어가 21시간의 강의를 무난히 해치웠다. 그랬더니 좀 엉뚱한 소문이 퍼졌다. 즉 나를 두고 천재라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소문을 알아차리고 마지막 시간에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으니 다시 말해서 두가 나쁜 사람입니다. 그것은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내 직장의 전화번호조차 기억 못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될 것입니다. 나는 기억력은 없지만 천만다행으로 사고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외우려 들지 않더라도 이렇게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뇌가 좋은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되고 보니 은근 슬쩍 내 자랑을 늘어놓은 것처럼 되고 말았지만 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고 사람 중에는 두가 보다 좋은 사람과, 뇌가 보다 좋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이야기한 것뿐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셔서 두가 좋은 사람에게는 뇌가 덜 좋게 만들어 주셨으니 우리들 자신이 둘 중에 무엇에 해당되든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대성할 수 있는 법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다.      해마다 우리는 입학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때마다 주관식이나 객관식이나 그 한편에 치우치는 출제방법에 대하여 항상 회의를 갖는다. 차라리 8·15전 일본에 있는 동경 문리학교처럼 시험없이 일단 모두 입학시킨 다음에 학기마다 엄격한 시험을 치러서 떨어뜨리고, 또 떨어뜨려 마지막 학기까지 남은 자만이 졸업의 영광을 차지하게 하도록 하는 제도가 가장 좋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입시제도는 잘해서 붙는 학생사이에 잘못해서 붙은 학생이 섞여 옥석을 가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시험 치르는 그 날 운수에 좌우되는 시험, 두만 좋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이 시험제도에 크나큰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사회는 두보다는 뇌가 좋은 사람을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