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세배돈

나 운  영

   세배돈이란 것이 있다. 도대체 세배 돈을 주거나 받는 풍습이 외국에도 있는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인지 또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요즘 어린이들과 달라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어린이들은 사유재산(?)이란 있을 리가 없었다. 따라서 돈을 만져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로 안다.
   혹 심부름을 다녀와도 거스름 돈을 몽땅 갖다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사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은데 돈이 없으니 항상 욕구불만에 쌓여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설날이 되면 세배 돈을 받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천재일우의 기회인지라 몇 달 전부터 설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금년에는 얼마씩이나 주실까? 형보다 얼마나 덜 주실까 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동생보다는 덜 주시지는 않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나날을 보냈다.

   드디어 설날이 왔다 때때옷을 입는데 옷고름은 그런대로 맬 수 있었으나 대님은 맬 줄 몰라 쩔쩔맸다. 어머님께서는 나에게 때때옷을 입히시느라고 온 신경을 다 쓰셨다. 그러나 나는 예나 지금이나 새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행여나 옷이 구기고 더럽혀질까봐 마음대로 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겨우 옷을 다 입고 온 가족이 모여야만 차례대로 세배를 드리게 되는데 나는 어른들에게 세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배 돈을 받는 것만이 목적이었다. 또 누가 얼마나 주시나 가 최대관심사였다 드디어 어른부터 차례대로 세배가 시작되었다. 나는 오 남매 중의 넷째이었기 때문에 내 동생에게만 절을 받고 아깝지만 세배 돈을 주었다.
   요즈음은 세배꾼이란 말이 좀 실감이 덜 나지만 예전에는 세배가 집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일가 댁에까지 일소대가 원정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집에서는 나이 순서대로 세배 돈을 주었기 때문에 형들은 많이 받고 나나 내 동생은 아주 적게 받는 것이 하나의 불문률 아닌 불문률로 되어 있었는데 어떤 일가 댁에 가게 되면 나이가 어릴수록 많이 주시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이렇게 저렇게 해서 두둑히 세배 돈을 모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뭐도 사고 뭐도 사고--- 한참 가슴이 부풀어 있는데 어머님께서 부르시는 것이었다. 왜 부르시는지 몰라 뛰어가 보니 세배 돈을 모조리 내놓으라는 것이 아닌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도 바라던 돈인데 몽땅 내놓으라는 어명(?)이니 야속하고 원통하고 골이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머님 말씀이 「이 돈을 모두 저축했다가 이 다음에 네가 웃 학교 갈 때에 보태 쓰면 얼마나 좋으냐?」고 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몇 달 전부터 고대했던 설날!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도 기분이 좋지만 뭐니뭐니 해도 세배 돈을 받아서 내 마음대로 실컷 써보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꿈이 졸지에 산산조각이 되어 버렸으니 나도 모르게 통곡이 터져 나왔다.

   어언간에 세배 돈을 받을 나이도 지난지 오래되어 주기만 해야 하는 처지가 된 요즈음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니 여러 가지 감회가 떠오른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나니」란 성경말씀도 있듯이 이왕이면 세배 돈을 자기 스스로가 저금해 뒀다가 남을 위해 기꺼이 쓰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어디 있을까 ….
   요즈음에 와서는 세배 돈을 필요악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 듯하나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만 해도 소득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1973. 1.  월간 자유공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