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나의 취미,나의 괴벽
-이두신어(吏讀新語) 창작-

나  운  영

   내 이름자에는 운동이란 운(運)자가 들어있지만 나는 운동과는 매우 거리가 먼 것만 같다. 왜냐하면 육상경기나 수상경기에 있어서 세 사람이 참가하면 맡아놓고 3등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뿐이겠는가?  재 작년 여름 몽산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3등을 했는데 바로 다음에는 드디어 1등을했다. 아예 혼자서 헤엄을 쳤었으니까…. 이처럼 스피드는 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끈기는 있기 때문인지 등산을 비교적 즐겨 중앙고보 재학시절에는 금강산에서 제일 높은 비로봉을 단연코 제일 먼저 올라갔었는데 이 말을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어찌하랴?  백운대나 비봉에 여럿이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 승가사를 비 내리는 새벽에 나 혼자 비를 맞아가며 오르는 그 맛과 멋이란 도가 통한 사람이 아니로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못하리라. 그러나 몸이 차차 중량급이 되어가고 보니 등산이란 암만해도 자학행위(?)인 것만 같이 생각되어지니 신노심역노라고나 해둘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책 사 모으는 것과 레코드 사 모으는 일이 가장 자랑할 만한 취미라 할 수 있다.  헌 책방을 샅샅이 뒤져 희귀한 책을 헐값으로 사가지고 돌아올 때의 기분이나, 몇 해를 두고 바라고 바랐던 진귀한 현대음악 레코드를 부르는 대로 값을 다 치르고라도 사가지고 집으로 향할 때는 항상 흥분을 감출 길이 없다. 이렇게 해서 사 모은 책, 악보, 레코드 중에는 나 혼자만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제법 많아졌으니 속히 정리 분류해서 음악 박물관을 차려 놓아야겠다.
   이 밖에도 다방순례, 미술전람회장 순례들도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취미라 할 수 있겠으나 뭐니뭐니 해도 근자에 와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나의 취미이자 괴벽은 신어 제조작업이다. 나는 소위 이두문학(?)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어 발음은 같아도 전혀 엉뚱한 뜻을 나타내는 말을 만들어 내는 버릇이 있는데 이것이 절대로 오랫동안 연구하는 일 없이 그저 즉흥적으로 머리에 떠올라 제때에 사람들을 웃기게 하니 아마 이두문학의 천재(天才 또는 淺才)인가보다.
   1960년 문교부 주최 전국 음악경연대회 때에 현악부분에 지망자가 한 사람도 없었기에 나는 이를 평해 가로되 단종애사(端宗哀史) 아닌 단종애사(斷種哀史)란 이두신어를 만들어 낸 일이 있었다. 그 뒤로 방언(方言과 邦言),  배외사상(拜外思想과 排外思想),  공처가(恐妻家와 恭妻家와 攻妻家),  음악(音樂과淫樂),  성가(聖歌와 性歌),  자유(自由와 恣遊),  방자(房子와 妨子),  전위음악(前衛音樂과 全衛音樂),  연고전(延高戰과 連苦戰) 등등을 계속 만들어냈다. 여기서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나는 한글전용을 전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방화(防火와 放火),  사교계(社交界와 邪交界),  실업가(實業家와 失業家),  범인(凡人과 犯人),  정치과(政治科와 丁齒科),  진통(鎭痛과 陣痛)등 어느 쪽인지 얼른 판단이 안갈 때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그야 이름씨와 명사싸움(?)도 좋지만 한글 학자들은 「우리말 엑센트 사전」부터 만들어 놓고 한글전용을 부르짖어야 할 것이 아닐까? 말이란 「고저」와「장단」에 따라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우리(我와 아),  교수회(敎授會와 絞首會)등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에 「음색」까지도 구별할 줄 알아야만 영광(榮光과 永光),  원인(原因과 遠因)등을 바르게 발음할 수 있는 법이니 심히 골치가 아프다.
   이쯤 되면 내가 과연 이두학자(學者)인지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남들을 괴롭히는 학자(虐者)인지 어쨌든 취미라고는 좀 악 취미요 차라리 괴벽이라고 해두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다.

 <1973. 4. 23. 연세춘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