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미리 쓴 유서

나  운  영

  [편집자 주]  나운영 장로가 너무 급작스레 서거하는 바람에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첫 번째 유언은 본인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하였지만, 두 번째 유언인 안구기증은 본인이 20여년동안 늘 강조하던 것이었는데, 심장마비에 의한 돌연사로 인해 그의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하게 되었다.
   멀지 않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의 중환자에게는 아무도 그 병명을 가르쳐주지 않는가보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품어보다가 죽으라는 뜻에서일지 모르나 그렇다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을까?  한마디 유언조차 못하고 가 버렸을 경우 유가족의 슬픔과 한은 더 클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지체없이 순종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니 도리어 미리미리 유언을 해두는 것이 마음이 홀가분해질 것만 같다.
   첫째로 나는 서울태생이지만 『내 무덤은 제주도 용수리에 있는 한국민속박물관 옆에 묻어달라』 공해가 없는 탐라섬, 구수한 얼굴로 나를 맞아주는 돌하르방, 일년내내 상록을 볼 수 있는 밀감나무,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특이한 민요, 그리고 산, 폭포, 바다와 물고기떼들…  오랫동안 나는 일방적으로 제주도를 사랑해 왔다.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는 제주도가 나를 더 사랑해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마음의 고향에 묻히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둘째로 내가 죽을 때에는 『내 눈을 소경들에게 바쳐달라』   나는 이상하게도 앞 못보는 음악학도를 다섯명이나 길러냈다. 그때에 나는 그들에게서 놀라운 감각과 피나는 노력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길에서 만나면 재수가 없다는 - 소경들이 수두룩한데 우리처럼 두 눈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일종의 사치(?)가 아닐까?  더욱이 두 눈을 무덤 속에서 값없이 썩혀 버리는 일은 혹시나 죄악(?)이 아닐까…  빛을 못보는 두 사람에게 내 눈을 각각 한쪽씩 이식해 주어야겠다. 스테레오(Stereo)식으로 한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보다는 모노(Mono)식으로 두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또 갑자기 무슨 망발인가?  유언이라면 가족들을 모아놓고나 조용히 할 일이지… 』 하겠지만 나의 유언은 공약(空約) 아닌 공약(公約)이요, 더욱이 눈알을 빼주겠다는 것은 공약(恐約)임엔 틀림없다.  다만 나와 뜻을 같이해줄 사람이 많이 나타나기를 은근히 바랄 뿐이다.

<1973.10.25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