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눈을 감았을 때와 떴을 때

나  운  영

    '눈을 감았을 때와 눈을 떴을 때'란 제목을 보니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20여년전에 나는 국립맹아학교를 방문한 일이 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쪽은 소경학생, 저쪽은 벙어리, 귀머거리 학생이 수용(?)되어 있는데 그들을 대하는 순간 어느 편이 과연 더 불행한가를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소경이 더 불행한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벙어리나 귀머거리들은 손짓으로 의사가 소통되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불편보다는 훨씬 나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 해 전 나는 한국 구화학교를 방문했을 때 역시 소경보다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보다 행복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그들은 손짓 대신에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고 알아들을 뿐만 아니라 훌륭하게 이야기도 하고 웅변도 하고 합창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소리를 못 듣는 것이 한이 되겠지만 시끄러운 소리, 욕지거리 소리, 쌍스러운 소리, 저속한 유행가, 정신위생상 해로운 음향 등등을 듣지 않고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도리어 다행스럽다고만 느껴지는 까닭이다.
   요즘 공해란 말이 많이 사용되지만 공해 중에도 제일 심각한 공해는 음향공해라고 생각될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빛을 못보는 사람, 앞을 못보는 사람이 가엾다. 소경들 중에는 지팡이 없이도 복잡한 서울거리를 혼자서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뿐이랴? 혼자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로 초행길을 다녀오는 사람, 혼자서 극장에 가서 영화구경(?)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는 귀와 코와 피부가 모두 눈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정상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도 암흑세계에서 방황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만약에 심학규처럼 하루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무엇을 볼 것인가? 아름다운 우리강산, 아름다운 꽃, 장엄한 제주도 성산일출, 꿈에도 그리던 어머님의 얼굴을 볼 수 있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거리의 쓰레기더미를 봤을 때 더러운 개천물을 봤을 때, 인간의 추악상, 사회의 부패상, 명동거리를 누비고 다니는 히피 족, 교통사고로 피를 쏟고 죽은 시체를 봤을 때 아찔 해서 순간적으로 다시 눈을 감아 버리리라. 우리는 과연 볼 것을 못 보거나, 못볼 것을 보는 것은 아닐까?
   귀머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벙어리가 찬송을 부르고, 소경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동시에 우리  정상인들은 그들의 눈과 귀와 입이 되어주어야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1874. 1. 월간 엠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