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3치(三痴)

나  운  영

   「백치」란 말이 있다. 천치바보를 두고 하는 말이다. 흔히 마릴린 몬로를 백치같은 미인이라고 하는데 이는 무엇 때문인가? 그녀에게서는 교양미나 지성미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리라.
   「음치」란 말이 있다. 노래를 틀리게 부르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아리랑」이나 「고향의 봄」, 「반달」, 「애국가」하나도 제대로 못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3치」란 또 무엇일까?
  첫째로 「남의 책을 빌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못난 사람이라고 한다.」
   책은 남에게 빌려서 읽는 법이 아니라는 뜻인가 보다. 자기 책을 가지고 읽어야만 읽다가 중요한 부분에 빨간 연필로 선을 그을 수 있고, 좀 쉬었다가 읽으려면 한쪽 모퉁이를 접을 수도 있는데 남의 책은 조심스러워서 마음 놓고 읽을 수 없으니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 마련이다. 뿐만 아니라 책은 반드시 당장 읽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리 사 놓으면 언젠가는 읽게 되고, 혹 자기는 안 읽더라도 나중에 다른 사람이라도 읽을 수 있으니 남에게 빌려 볼 생각이란 아예 안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더욱이 책이란 읽을 때의 기쁨은 물론 책을 사 가지고 돌아올 때에도 행복감을 느끼게 되니 남의 책을 빌리는 것은 3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책을 남에게 빌려주는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요, 못난 사람이라고 한다.」
   책은 남에게 빌려주는 법이 아니라는 뜻인가 보다. 남에게 빌려준 책은 거의 되돌아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귀한 책을 빌려주었을 때 먼저 기한을 정해야 하는데 아무리 기한을 정해도 그 기일을 지켜주지 않으니 소용이 없지 않은가. 또 나 자신이 요즈음 읽지 않는 책이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빌려주고 나면 웬일인지 갑자기 그 책이 필요해질 때가 많으니 큰 낭패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남의 책을 빌려다 놓고도 틈이 없어 읽지 못하고 묵혔다가 기한이 지난 뒤에 읽기 시작하면 자연 약속을 어기게 되는 수가 허다하다.
   이렇게 해서 시일이 오래 지나면 책을 빌려준 사람도 빌려줬던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릴 때가 있다. 논문을 쓸 때 참고 하려고 갑자기 책을 찾으니 책이 있을 리가 없다. 이쯤 되면 그 책은 완전히 잃어 버린 셈이 된다. 따라서 좀 매정스럽다고 말 할지는 모르나 책은 안 빌려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인가보다.
   셋째로 「남에게 빌렸던 책을 주인에게 돌려주는 사람은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요, 못난 사함이라고 한다.」
   양심적으로 돌려주는 것이 어째서 3치에 속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남의 책을 빌려다 읽으면 읽는 동안에 그 책에 대해 애착을 느끼게 되니 주인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 누구나의 심리일 것인즉 이를 어찌하랴. 이처럼 책을 남에게 빌려줄 때에는 아주 떼일 것을 각오해야 되니 그런 줄 알면서도 빌려주는 사람이야말로 어리석은 사람이요, 못난 사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6.25사변 전 어느 선배 음악가에게 새까만 후배가 바이올린을 3일간만 빌려 달라고 애원하니 근엄한 그 선배 가로되 '"마누라와 바이올린은 빌려줄 수 없다."고 잘라 말하는 것을 목격한 일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선배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요즈음 생각하니 이보다 「명언」이 없는 듯싶다. 즉 바이올린을 빌리는 사람이나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렸던 것을 돌려주는 사람이나 모두가 3치에 속한다. 바이올리니스트에 있어서 자기의 바이올린은 「애기(愛器)」요, 「분신」이요 그야말로 한 몸과 다름없이 소중한 것이니 아예 그런 소리일랑 하지도 말라고 한 그 선배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제 이 바이올린을 책으로, 악보로, 레코드로 , 녹음 테이프로 바꿔놓고 생각할 때 우리는 3치 중 어느 부류에라도 속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하게 된다.
   작년 8월 20일에 개관된 민속음악박물관에 이어 역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음악도서관을 4월 5일에 개관한 이 마당에 이와같이 3치란 말이 머리에 떠오르는 까닭은 또 무엇일까. 솔직하게 말해서 나 자신도 3치에 속하는 사람이었었기 때문이다. 40년간 모아온 것들을 사회에 내놓으면서 이 말을 다시금 되씹어본다.

 <1974. 6. 월간 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