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오늘을 사는 지혜


나  운  영


보지 말라,  듣지 말라,  말하지 말라.

   요즘 아케이트나 백화점에 가면 세 마리 원숭이의 목각판이 많이 눈에 띈다. 이것은 본래 일본 닛고에 있는 미사루로서 「보지 말라, 듣지 말라, 말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이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많다.
   첫째로 「남의 결점, 약점을 보지 말라. 남의 치부를 보지 말라.」라는 교훈이다. 남의 장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법인지는 몰라도 왜 그다지도 남의 결점만이 잘 보이는 것일까? 혹시 색안경을 끼고 보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호의를 가지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을 대할 때 나쁜 것이 눈에 띌 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는 어린이의 눈동자에서 천사의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우리마음이 깨끗하면 남의 결점이란 그리 손쉽게 논에 띄는 법이 아니니 남의 장점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둘째로 「퇴폐적인 음악을 듣지 말라. 남들이 중상모략하는 말을 곧이 듣지 말라. 남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라는 교훈이다. 나는 TV나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저질음악을 들을 때마다 이것이야말로 음악고문이요, 이보다 더한 음악공해는 없다고 느껴진다. 눈이란 순간적으로 감아 버릴 수도 있지만 귀만은 그때 그때마다 두 손으로 완전히 가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큰 문제가 아닌가? 따라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버려야 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우리는 건전한 음악만을 듣자. 적어도 새벽이나 심야에 만이라도 명상적인 종교음악을 듣자. 또한 남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자가 되자. 남의 감언이설을 물리쳐야겠다. 철의 장막 속에 갇혀서 결과적으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셋째로 「거짓을 말하지 말라. 남의 약점을 말하지 말라. 남을 저주하지 말라.」라는 교훈이다 입이란 자기자신이 직접 토해내는 나쁜 말 뿐 아니라 남의 나쁜 말을 제 삼자에게 전달하는 경우에 더 많은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더욱이 이간질을 하는 말 같은 것을 삼가야겠다. 따라서 유구무언이라든가, 수구여병, 장부일언 중천금같은 옛말을 좌우명으로 삼아야겠다. 남의 장점을 말하자. 막역한 사이일수록 충고, 진언을 서슴치 말자. 자기의 소신을 솔직하게 말하자. 자기 혼자 구원받을 생각을 말로 남에게 전도하는데 힘쓰자.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말을 실천에 옮기자. 언행일치, 신행일치란 말이 있듯이 자기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사람의 3대본능이요, 민주시민의 특권이다. 그러나 때와 장소에 따라 이를 억제할 줄도 알아야만 교양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남이 안하는 일을 하련다

   「나의 길을 가련다」-  이것은 나의 옛 생활신조이다. 나는 나의 목표가 이미 뚜렷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한눈도 팔지 않고 남의 꾐에 넘어가지도 않고 남을 적대시하거나 모략중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특별히 많은 수양을 쌓은 것도 아니지만 남의 일에 신경을 쓸 시간여유도 없고, 남 때문에 나의 소신을 굽힐 나이도 아닌 까닭이다. 흔히 우리들 사회에는 지나친 경쟁심에서 남의 앞길을 막아 버리려 들거나 심지어 남을 나무 위에 올라가게 해놓고 흔들어 떨어뜨리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닌데 이 모두가 자기의 갈 길을 정하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이나 졸장부들이 하는 짓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남보다 앞서 달리기는커녕 함께 가기조차 힘든 일임을 나는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요즈음 나의 심경에는 큰 변화가 왔으니 즉 '남이 안하는 일을 하련다.'라는 새로운 생활신조다. 아예 남의 경쟁 상대조차 되지 않는 듯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이다.
   제 아무리 홀로 조심스럽게 나의 길을 꾸준히 가려해도 - 그러면 그럴수록 방해와 박해가 심해지기만 하니 말이다. 공생공사란 무엇인가? 없는 중에도 힘을 합치고 마음을 모아 같이 잘 살아보자는 말이 아닌가?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도 잘 해결 안되는 일에 서로 시기, 질투, 모략, 중상을 일삼는다면 될 것도 안되어 마침내  '공사(共死)'의  종말이 우리를 기다릴 뿐이니 아예  공존할 순진한 생각일랑 버리고 다른 길, 또 하나의  길을 찾아 홀로 걸어가는 것이 속 편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로마로 향하는 길은 얼마든지 있다. 오직 한 길만을 서로 달리려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각자 자기의 갈 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공생의 길이 아닐까?
   『나는 사명감에 불타는 사나이인 까닭에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갈 뿐입니다. 남과 경쟁하려는 생각조차 별로 없습니다. 남들이 하는 일과, 나 자신이 할 일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모두 달리는  그 길을 달리고 싶지 않습니다. 남들이 안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즉 남들과는 다른 또 하나의 길을 조심스럽게 달릴 따름입니다.민족적 아이디어와 현대적 스타일을 결부시킴으로써 현대적 한국음악을 창조하는 일과 서양음악의 작곡이론을 한국적으로 섭취하여 민족음악의 작곡학적 체계를 확립하는 일 -이것만이 나의 갈 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상은 1962년 『사상계지』에 실렸던「나의 인생관」의 한 구절이다. 이것을 보면 그때부터 나의 생각이 굳어졌던 것이 아닌가도 느껴진다. 로마로 향하는 길은 얼 마든지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멀고 멀기만 하구나---길을 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무서운 재앙이 온다는 옛날얘기가 문득 머리에 떠오른다. 또한 밤길을 혼자 갈 때에는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운 법이다. 그러나 일단 뒤를 돌아보고 싶을 때에는 돌아봐야만 속이 시원하다. 이제 나의 걸어온 길을 회고할 때 너무나도 허무한 것을 느끼게 되니 이것도 나이 탓일까? '철들자 망년'이란 속담에 비하면 나이 탓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골이 빈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 갈대가 돼야겠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오직 나의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 가야겠다.



 <1974. 6.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