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3 '스타일과 아이디어'
 

창작 메모
- 에밀레종을 중심으로 -

나  운  영

   지금부터 20년전의 일이 생각난다. 부산 피난시절 마리아 앤더슨의 첫 번째 내한공연 때 나는 이화여대에 봉직하던 중 뜻밖에 총장의 점심 초대를 받아 가슴을 설레고 가보니 앤더슨 음악회의 초대였다. 다음 순간 - 왕년의 크라이슬러의 명 반주자였던 프란쯔 루프가 피아노 반주를 하는데 노래보다 완전 8도를 높여서 치지 않겠는가? 나는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는지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그 까닭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이 의문이 해결되지 못한 채 20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작년 9월부터 구상을 하다가 12월 하순부터 오페라 「에밀레 종」(김문응 대본)을 쓰기 시작한 것이 3개월만에 멜로디 스케치가 끝났고, 이어 피아노 스코어를 끝마치는데 3개월이 걸렸고, 마지막 작업인 관현악 편곡을 서둘러야 할 단계에 이르렀을 때였다. 나는 관현악 편곡에 있어서 좀 색다르다기 보다 독특한 수법을 생각해 내기에 온갖 진통을 겪었다.
  첫째로 바이올린은 해금으로, 비올라는 가야금으로, 첼로는 거문고로, 더블 베이스는 아쟁의 효과를 내기로 했다.  따라서 바이올린과 더블 베이스는 아르코(弓奏)로, 비올라와 첼로는 피치카토(彈奏)로 연주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서양악기를 가지고도 국악의 멋과 맛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비브라톤으로 편곡의 효과를 내기로 했고,
  셋째로 국악기로는 장고, 북, 징, 소라(나각), 나발, 요령, 박을 사용하기로 했고,
  넷째로 「봉덕」의 망령이 나타나는 장면에는 뮤지컬소우(톱)을 사용하여 요기에 찬 여아의 울음소리를 표현하기로 했다.
  다섯째로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오페라를 듣던지 관현악 반주가 무식하게 커서 노래가 잘 들리지 않는 수가 많은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가 큰 고민이 아닐 수 없었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오랫동안 머리를 짜내던 중 20년 전의 앤더슨 반주자의 생각이 홀연히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즉 노래에 대해 반주를 완전 8도 높이거나 또는 낮추면 관현악이 반주 아닌 방주(妨奏) -다시 말해서 협조적방해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실험을 해본 것이 지난번 10년만에 열려 대가로서의 관록을 과시한 김천애 독창회에서였다. 그 때 나는 김 여사를 위해 예술가곡 「접동새」와 오페라 「에밀레 종」중에서 목련의 아리아 「마음은 울면서도」를 이 방식대로 편곡해서 들어보니 나의 예상이 그대로 들어 맞았다.
  작품을 구상하는데 비교적 오랜 시일이 소요되는 나는 우선 창작 메모에다 아이디어와 테크닉에 관한 것을 자세히 적어놓고 거의 구상이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비로소 본격적인 작업으로 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쓰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된다. 지금하고 있는 「에밀레 종]의 관현악 편곡도 착수한 것이 6월 초순이었는데 벌써 절반 이상되어가니 7월 중에는 4막 6장의 전곡이 완성될 것이 분명하다. 마침 다행히도 방학 때라 요즈음에는 하루 평균 8시간의 고된 작업을 계속 강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오페라가 서양의 고전 낭만음악의 서투른 모방에 그치지 않고 누가 듣든지 동양음악이요, 동양 3국 중에서도 한국음악인 것이 증명되어야만 문화외교의 일익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고 보니 행여나 국적불명의 작품 또는 외국2세의 음악이란 낙인이 찍히지 않도록 전력을 다해야 되겠다는 것을 다짐하게 된다.
  이밖에 가장 고생한 것은 레치타티브의 처리였다. 왜냐하면 이것을 잘 써야 가사전달이 잘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는 국어 엑센트 사전이 없으니 말도 안되지만 말은 고저보다도 장단이 더욱 중요하다. 가령 「말」은 말이로되 말(言語)와 말(馬)은 다르고, 「눈」은 눈이로되 눈(雪)과 눈(目)은 구별되어야 한다, 이밖에 대사의 리듬과 곡조의 리듬이 일치돼야 한다. 즉 「어야디야」는 「어야아디이야」 또는 「어어야아디이야아」여서는 안된다. 「어어야디야아」 (6/8박자에 있어서 4분음표+8분음표+8분음표+4분음표)가 돼야 한다. 이처럼 말의 고저, 장단, 리듬을 지켜야 자연스러운 레치타티브가 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알려면 오페라를 들어보면 된다」는 말이 생각난다. 「에밀레 종」을 쓰면서 오페라를 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든다는 것을 수 없이 느꼈으며 모차르트, 바그너, 베르디, 푸치니는 말할 것도 없고 위대한 태작(?)인 「피델리오」에 있어서 한 아리아를 18회나 다시 썼다는 베토벤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머리가 수그러진다.
  「에밀레 종」이 완성되면 곧 이어 또 다른 작품인 「교향곡 제12번」에 손을 대야겠다. 이것을 완성시키려면 더위도 잊을 수 있으리라.

 <1972. 8. 월간 중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