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민요의 채보와 편곡의 문제점

나  운  영

   8·15 해방 9주년에 일제의 음악(유행가)만은 아직도 해방이 되지 않았으나 일면 국악에 대한 일반 ─ 특히 중.고등학생 ―의 관심이 커진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시조나 소리 한 마디를 못해서는 행세를 하지 못하게끔 되었고 우리 고전무용을 추는 것도 하나의 상식이다. 이에 따라 소위 양악인들 가운데서도 국악을 채보 또는 편곡하는 자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으니 이 또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금번 『한국민요곡집』(국민음악연구회 발행)이 여덟 사람의 채보편곡과 장사훈씨의 적절한 해설로 ― 해외선전을 목적삼고 ― 출판되었음을 볼 때 국악발전을 위하여 또 다시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채보 편곡의 방법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도리어 원곡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무서운 사실을 또한 우리는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일례를 들면 흔히 「흥타령」과 「천안삼거리」를 혼동하여 부분적으로 절충(?)시킨 것이 있는가 하면 국악은 5성으로만 되어 있다는 착각에서 반음 또는 4분음 등을 억지로 온음으로 뜯어고쳐 버린 것이 많음을 볼 때 그 용감성(?)에 놀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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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율 채보에 있어 음을 정확히 기보해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주선율을 분별하지 못한 것이 허다함은 유감이다. 「천안삼거리」 중 '에루아 에루아 좋다 흥', 「풍년가」 중  '풍년이 왔네', 「농부가」 중  '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 월출동녘에 달이 돋는다'의 부분은 일상 우리가 듣는 것과 전혀 다르고, 「쾌지나칭칭 나네」 「강강수월래」 「몽금포 타령」은 장식음을 세밀히 채보했기 때문에 가락의 줄거리를 찾아낼 수 없는 정도로 복잡하여 그 맛을 알기 곤란하고 「양산도」는 부분적으로 개작하였으므로 원곡과 거리가 먼 감이 있고 「닐리리야」 「새타령」은 재래의 것을 채보하는 것이 국제적으로 더욱 의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2>

   선율 채보 다음에 따르는 것은 화성 문제이다. 3화음을 써야 하느냐, 부가화음, 4도화성 등을 써야 하느냐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모색을 계속하고 있는 형편이나 다만 여기서 나로서는 「선율과 화성이 잘 부합되어야 한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농부가」 「도라지 타령」 「쾌지나칭칭 나네」 「방아타령」 「닐리리야」 「밀양 아리랑」 「새타령」 「강강수월래」는 주로 3화음으로 편곡되었으며, 「아리랑」은 부가화음으로, 「양산도」 「박연폭포」는 3화음과 부가화음을 절충시켰다. 물론 전자에 비하면 후자가 월등히 좋다고 생각되기도 하겠으나 나로서는 4도화성을 주로 사용한 「노들강변」 「풍년가」 「천안 삼거리」 「 광한루」 「몽금포 타령」이 더욱 선율과 잘 부합된다고 본다. 같은 3화음일지라도 부3화음을 많이 쓰면 다소라도 민속적인 맛이 날 수도 있으나 정3화음 만으로 또는 변화화음, 전조 등을 적용하면 더욱 서양 취미가 되어 버릴 염려가 많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나는 이에 한 걸음 더 나아가 [화성적으로 처리하는 것 보다 대위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는 것을 부언해 둔다.

<3>

   우리 민요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장단'에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환언하면 우리민요에 '왈츠'나 '룸바'의 리듬을 결부시켜서는 안될 말이다. 그 곡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단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농부가」 「쾌지나칭칭 나네」 「새타령」 「강강수월래」 「도라지타령」은 '왈츠' 리듬으로 개편이 되었으며, 「몽금포타령」 「방아타령」 「닐리리야」 「노들강변」 「풍년가」 「광한루」는 본래의 장단과 '왈츠'의 장단이 절충된 것이며, 「아리랑」 「천안 삼거리」 「양산도」 「밀양 아리랑」 「박연폭포」는 본래의 장단이 사용된 셈이다. 나는 우리의 기본 장단인 「굿거리」 「타령」 「도드리」등을 끝까지 되풀이하는 것 보다는 부분적으로 변화시킨 장단을 더욱 연구하여 채보하는 것이 음악적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자고로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이 있는 것 같이 연주자에 따라 장단 치는 법이 다르므로 되도록이면 명고수의 장단을 참고하여 좀 더 예술적인―변화가 있는―장단을 채택하는 것이 좋을 줄로 생각한다. 「외국인의 귀에 흥미있게 들리는 것이 민요의 선율 자체보다는 싱코페이션적인―정상적이 아닌듯한―장단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재삼 음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밖에 선율 채보의 정확성을 기하려면 미분음 부호를 사용해야 할 것이며 우리 음악에 있어서의 독특한 장식음을 채보하기 위한 새로운 기보법 등에도 언급해야 할 것이나 이것은 후일로 미루련다. 하여튼 이같이 우리 민요가 채보, 편곡되는 것은 국악의 장래를 위하여 뜻깊은 현상이다. 다만 여기에서 그치지 말고 편작곡 단계를 거쳐 앞으로 작곡에까지 발전되는 날이 하루 바삐 오기를 고대한다. 이제 민요의 채보 편곡의 문제에 관하여 바르토크(1881∼1945)와 코다이(1882∼1967)의 경우를 일고해 보는 것도 과히 망발된 일은 아니리라. 누구보다도 헝가리 민요의 과학적 연구에 성공한 자는 이 양인이다. 그들은 실로 현대 헝가리 음악의 건설자이다. 특히 바르토크는 자국의 민요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코다이와 함께 민요와 농민의 무곡을 수집하기 위하여 각지를 답사하였다. 그리하여 1904년부터 10년간에―이미 발표되었던 수천곡 이외에도―2700의 헝가리 민요, 3500의 루마니아 민요와 200의 아라비아 민요를 발굴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그는 창작에 있어서 새로운 전환을 보게 되었다. 이 때로부터 그는 민속음악의 기반 위에 서서 재래의 서구 음악의 전통에서 벗어난 독창적인 새로운 음악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드뷔시의 화음감과 베토벤의 형식감 그리고 바하의 대위법과의 종합만이 나의 이상이다"라고 한 그의 말을―물론 이것이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적용된다고 볼 수 없다 치더라도―우리는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으로 각도 민요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널리 국악(아악,당악,향악,속악) 전면에 걸쳐 채보 편곡하는 운동이 마땅히 전개되어야 할 것을 절실히 느끼는 동시에 최소한도로 일제 시대의 왜색 유행가의 부산물(?)이었던 소위 [신 민요]부터라도 채보 편곡하여 보급시키는 새로운 운동이 또한 시급히 일어나기를 나는 요망한다. 신민요는 현대화한 국악이며 실로 한국적 정서가 넘쳐 흐르는 민요이다. 따라서 가장 대중성을 띤 이 신민요가 널리 유행된다면 왜색 유행가는 자연 도태될 것이 아닌가? 이미 발표되었던 김성태씨의 「한국민요곡집」과 「몽금포타령」을 주제로 한 「교향시 카프리치오」그리고 양산도를 주제로한 김동진씨의 교향시「양산가」와 함께 신간『한국 민요곡집』은 상술한바 민요의 편곡 채보 편작곡 등에 관하여 또 하나의 새로운 문제를 던져 준 감이 적지 않다.

<월간 새벽」 1954.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