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한국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
―한국에 있어서의 음악적 처지와 작곡가로서의 나의 길―

나  운  영

<서론>
   1975년 10월 18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개최된 「제3회 아세아 작곡가 회의」 때 일본 대표인 모로이사부로(入野義朗) 선생은 「일본에 있어서의 음악적 처지와 작곡가로서의 나의 길」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일이 있다.
   이제 나는 한국 현대음악협회 주최 「'76 현대음악제」에서 「한국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라는 주제로 강연코자 한다.

   무릇 어학을 배우려면 먼저 국어를 배운 다음에 영어, 제2외국어를 배워야 하고, 역사를 배우려면 먼저 국사를 배운 다음에 동양사, 서양사를 배워야 한다. 따라서 먼저 음악을 배우려면 먼저 국악을 배운 다음에 동양음악, 서양음악을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것을 안 다음에 다른 나라의 음악을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또한 문학의 경우 고전문학을 배운 다음에 현대문학을 배워야 하는 것과 같이 음악의 경우에도 전고전음악을 배운 다음에 고전음악. 낭만음악. 근대음악. 현대음악의 순으로 배워야 한다. 다시 말해서 현대음악에 대해서도 상식을 갖추고 있어야만 현대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는 국악을 모르는 국민, 현대음악을 모르는 국민이 되고 말았으니 이는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의 맹점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론>
   민족음악을 창조하려면 「선 토착화 후 현대화」의 과정을 반드시 밟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작곡가들은 민속적인 소재를 발굴하여 창작에 반영시킬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구미의 작곡가들이 영감의 고갈, 소재의 빈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동양음악의 「노다지」를 캐 가고 있으니 우리는 이 「노다지」를 외국 사람들에게 빼앗기기 전에 발굴, 발전시켜야겠다. 이런 점에서 첫째로 토착화가 시급하다. 둘째로 아무리 토착화에 대해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대화시키지 못한다면 한 낱 민속음악, 향토음악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저 헝가리의 바르토크, 코다이, 리게티 모양으로 우리도 민속적인 소재를 현대화시켜야만 비로소 국제성을 띤 민족음악이 된다. 만약에 민속적인 소재를 현대화시키지 않으면 원료요 토산품이요 공동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찬란했던 옛 문화만을 자랑하고 있을 수는 없다. 현대적 감각의 우리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 생각해 볼 때 고전적인 양식에서부터 낭만적 양식, 근대적 양식, 현대적 양식을 골고루 거쳐 왔을 뿐만 아니라 후기 낭만파, 인상파, 표현파, 신고전주의, 신원시주의, 신국민주의, 무조주의, 다조주의, 12음기법, 점묘적 수법, 우연성 음악, 불확정성 음악, 전위적 수법 등등으로 많은 기악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제부터 그 중 24곡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가해 보고자 한다. 이것이 나의 걸어온 길을 회고하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작곡가들이 장차 걸어가는 데 있어서 무엇인가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데에 참 뜻이 있다는 것을 미리 밝혀 두는 바이다.

  1. Rhapsody for Piano No. 1 (1942)
     Fantasy & Dance로서 전음음계 전음화음 무조적 선율 장3도 음정의 병행법 등으로 되어 있으며 Debussy. Bartok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2. String Quartet No. 1= "Romantic" (1942)
     무조적 선율.후기 낭만파적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Bartok. Schonberg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3. Cello Sonata No. 1"Classic" (1946)
     특히 제3악장에서 민속조의 선율과 장구 장단이 나오는데 토착화에 대해 눈이 뜬 최초의 실내악 작품이다.
  4. 6 Preludes for Piano  (1955)
     제 1 악장(수수께끼)에서 12음기법이 시도된―우리나라 최초의 12음 음악이다.
  5. Piano Trio  (1955)
     12음기법으로 전3악장을 작곡했고 특히 현악기에 있어서 Glissando를 애용했으며 제3악장에서 민요조의 음열을 사용함으로써 12음기법으로도 한국적인 것을 표출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토착화+현대화의 첫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6. Sanjo for Violin & Piano (1955)
     중중모리-언모리-휘모리-세산조시 장단으로 된 이 곡은 Do가 생략된 6음음계, Sol과 Fa가 생략된 5음음계, Mi와 Si가 생략된 5음음계, Fa와 Do가 생략된 5음음계를 사용했고, 부가화음, 4도화성, 특히 Violin에 있어서 완전4도 음정의 병행법 등을 활용했으니 토착화의 본격적 시도라 하겠다.
  7. Easter Cantata (1956)
     변화산상(제2곡)에서 류구음계를 사용했고 특히 「골고다의 언덕길」(제4곡)에서 판소리식 선율을 시도했다.
  8. Christmas Cantata (1956)
     민속적 선율, 장구 장단으로 되어 있으며 우리나라 음악에 있어서의 정적인 면을 강조했다.
  9. Symphony No. 1 "Korean War" (1958)
   특히 제4악장에서 「새납」과 「장구」를 사용하여 농악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10. Symphony No. 2 "1961" (1962)
     제2악장에서 12음기법을 구사했고, 특히 3악장에서는 국악 조율에 가장 흡사한 Double Harmonic Scale을 사용하였다.
11. Symphony No. 3 (1963)
     단악장 형식의 곡으로서 3.5.6.7.9.12음음계를 사용했고, Piano와 Celesta로 Chance operations를 시도했을 뿐만 아니라 Harmonia Ostinato기법을 창안, 시도한―토착화+현대화의 본격적 시도라 볼 수 있다.
12. Piano Concerto No. 1 (1963)
     신고전주의적 작품으로서 제1악장의 제1주제에서 Chime Chord를 사용함으로써 편경의 효과를 살렸으며 제3악장에서는 단2도의 음향을 애용하였다.
13. Symphony No. 4 (1964)
     제2악장에서 점묘적 기법을 처음으로 시도했으며 제3악장에서는 Rhythm Canon을 창안, 시도했고, 제1악장에서는 Sonata form으로 되어 있는데 재현부가 생략된 대신 이것이 제3악장에서 비로소 재현되도록 함으로써 음악 형식의 개혁을 시도하였다.
14. Violin Concerto No. 1 "Romantic" (1965)
     특히 제2악장에서 La's Bitonal Chord를 창안.시도했다.
15. Shinawi for 8 Players (1965)
   조성과 음계가 틀리는 5종의 Theme에 의한 Improvisation으로서 다조적인 Canon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16. Symphony No. 5 (1966)
     5.6.7.12음음계와 류구음계에 음열기법을 적용했고, 12음에 의한 음열에  비화성음을 활용했고 전5악장에 있어서 각각 제1.2.3.4악장의 제3부분이 제5악장에서 종합되도록 작곡하였으므로 범음열기법의 시도와 음악 형식에 대한 개혁으로 볼 수 있는 야심작이다.
17. Symphony No. 7 "The Bible" (1967)
     전7악장으로서 악장마다 조명을 달리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악장마다 두 개의 기본 음정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복합화음을 사용한―우연성음악.불확정성 음악의 첫 시도이다.
18. Violin Concerto No. 2 (1969)
     Violin으로  해금의 효과를 낸―민속적 작품이다.
19. Piano Concerto No. 3 (1969)
     Piano로 가야금.거문고의 효과를 낸―신원시주의적 작품이다.
20. Symphony No. 11 (1969)
     Symphony Band를 위한 곡으로서 제2악장에서 농악 장단을 활용하였고,Whole tone Scale에 의한 Cluster의 첫 시도인 동시에 신원시주의적+신민족주의적 작품으로서 Stravinsky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
21. Symphony No. 9 "Sanjo" (1969)
     단악장 형식의 곡으로서 병행해도 음정차가 같은 새로운 음계를 창안.시도했고, 점묘적 기법을 활용한―아악의 현대화라고 말할 수 있는 역작이다.
22. Symphony No. 10 "The Creation"(1972)
     제1악장은 Harmony만의 음악, 제2악장은 Rhythm만의 음악, 제3악장은 Melody만의 음악, 제4악장은 Melody+Harmony의 음악, 제5악장은 Melody+Rhythm의음악, 제6악장은 Rhythm+Harmony의음악, 제7악장은 Rhythm+Melody+Harmony의 음악으로서 Rainbow Scale, Rainbow Chord를 창안.시도했고 Graphic Notation을 시도한 문제작이다.
23. Symphony No. 12 (1974)
     현악기군을 ordinario와 Scordatura의 2조로 나누어 배치함으로써 말하자면 Scordatura를 처음 시도한 작품이다.
24. Symphony N0. 13 (1974)
     나발.목탁.장구를 사용했고 특히 제2악장에서는 7음으로 된 Atonal Scale을 창안하여 이를 Serie적으로 처리하였고 제3악장은 점묘적 기법으로  되어 있어 농악의 현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결론>
   우리는 「선토착화 후현대화」를 창작 신조로 삼아야겠다. 그런데 토착화와 현대화를 전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 둘 중 하나를 등한시하려 드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선현대화 후토착화」를 주장하려 드는 사람도 있는 듯하나 이는 잘못이다. 왜냐하면 외국작품의 모방 표절 작품, 독일.미국의 2세적 작품, 국적불명의 작품이 나도는 원인이 선현대화에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민족적 Idea에 현대적 Style이 결부된 창작을 해야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한국 민족음악이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며 한국 현대음악협회 주최 「'76 현대음악제」에서 큰 의의를 찾고 싶다.

  <1976. 6. 25 국립극장 소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