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한국음악의 미래

나  운  영

   1977년 토마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이래 100년이 넘은 오늘날 우리는 서양음악.동양음악.한국음악.전고전음악.고전음악.낭만음악.근대음악.현대음악.화성적 단선음악(Homophony).대위법적 다성음악(Polyphony).고전음악.세속음악.순수음악.재즈  등등이 범람하는 가운데서 살아 오고 있다.

    이에 따라 유성기 판에서 S.P.,L.P.,Mono,Stereo로 발전하는가 하면 요즈음에는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가 인기를 모으고 있어 「레코드 산업」이라는 낱말이 생겨날 정도에 이르렀으니 아마 에디슨 자신도 미쳐 상상 못했을 놀라운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한국음악의 미래」란 거창한 제목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레코드 산업이 한국 음악 발전에 얼마나 큰 공헌을 할 것인가를 강조해 달라는 것이 편집자의 의도인 듯 싶다. 그런데 나는 이에 앞서 「한국음악」의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한국음악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이것을 세가지로 분류하고 싶다.

   첫째는 한국음악의 준말로서의 국악을 뜻하는 것―다시 말해서 서양음악은 물론 동양음악까지도 제외한 좁은 의미의 한국음악을 가리키는 말.
   둘째는 국악과 동양음악을 제외한 순 서양음악만을 가리키는 말.
   셋째는 국악.동양음악.서양음악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음악―다시 말해서 「한국에 있어서의 음악」을 가리키는 말.

   그런데 국제문화 교류 시대에 있어서 다른 나라의 음악을 전적으로 도외시하려 드는 생각이나 반대로 우리 고유 음악을 전적으로 무시하려 드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 따라서 국악.동양음악.서양음악 중 어느 하나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통틀어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상 우리는 동양과 서양의 두 가지 문화권에서 살아 오고 있는데 그 중 한편을 중시하는 나머지 다른 편을 경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동양문화 중에서도 우선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삼고 이에 동양음악과 서양음악을 올바르게 섭취해야만 세계성을 띤 한국민족음악이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니 고루한 생각, 좁은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외국 라이센스 레코드를 주로 생산하고 있는 우리나라 레코드 산업에 있어서 나는 세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로 서양음악을 수입하는 데 있어서 일대 개혁이 단행되어야겠다. 즉 기악곡의 경우 바하―하이든―모짜르트―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의 순으로 감상하는 방법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 즉 처음부터 대위법적인 난해한 바하의 음악을 듣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화성적이고 단순 명쾌한 비발디의 음악부터 듣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또한 독일계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감상하는 것보다는 이태리, 프랑스, 러시아, 스페인 계통의 음악을 많이 듣게 하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서 「독일계 음악 일변도」에서 일단 탈피해야만 한다. 우리의 생리에 비교적 잘 맞는 각 나라의 음악을 골고루 들음으로써 감상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나는 비발디, 텔레만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5인조 음악(브로딘.무소르그스키.림스키­코르사코프 등), 차이코프스키.드보르작.포레.그리그.팔랴.샤브리에.그라나도스.알베니스.드뷔시.라벨, 프랑스 6인조(오네게르.미요.폴랑크 등).야나첵.사티.스트라빈스키.바르토크.프로코피에프.거슈인.블로흐.바레즈.코플란드.브리튼.본­윌리암스.쇼스타코비치.하차투리안.졸리베.메시앙.크세나키스.리겟티.펜데레쯔키 등등을 권하고 싶다. 사실상 우리는 지금까지 편식을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 생각된다. 즉 소위 비인 고전파 음악을 집중적으로 들어 왔거나, 근대.현대음악을 아예 외면해 왔거나, 소위 전위음악에 지나친 관심을 가져 왔던 것은 아닐까?

   둘째로 동양음악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즉 동남아 음악을 폭 넓게 들을 필요가 있다. 소위 「실크로드의 음악」을 더듬는 것이 매우 흥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음악 즉 국악을 이해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나는 아라비아음악.파키스탄음악.인도음악.몽고음악.타이.중국.대만.일본.필리핀 등등의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을 비교 감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셋째로 우리나라 고유음악을 자주 들어봐야 한다. 특히 성악곡에 있어서의 판소리.가곡.가사.범패.잡가.민요 등과 기악곡에 있어서의 가야금 산조.거문고 산조.시나위.영산회상.취타 등등을 열심히 들어보라. 나는 이 음악에서 서양음악은 물론 동양음악에서는 맛볼 수 없는 특이한 장단, 가락, 연주법을 만끽하게 되며 가락 자체에 내포되어 있는 화성은 물론이고 특히 헤테로포니(Heterophony)로 된 기악 합주에서 또한 근대.현대화성을 직감할 수가 있다.

   한국음악의 「미래」를 전망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현재」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즉 서양음악 일변도의 우리나라 학교 교육이 가져다 준 잘못을 우리 후세에 그대로 물려줘서야 될 말인가? 우리나라는 서양음악의 식민지인가?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외래문화.신문화의 무비판적인 수용단계에서 이제는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그리고 「세계 음악 속에서의 한국음악」을 바로 인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에 앞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서양 음악만을 숭상(?) 하려 드는 의식 구조와 반대로 국악을 도외시하려 드는 의식 구조를 청산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놓고 서양음악―동양음악―국악을 골고루 감상해야 한다.

   성악곡의 경우 슈베르트.슈만보다는 무소르그스키.포레.뒤파르크.드보르작.드뷔시.라벨 등의 가곡을 들어 보아야 하고, 모짜르트.바그너.베르디보다는 비제.푸치니.마스카니.메놋티 등등의 오페라를 들어 보아야 하고, 바하.헨델보다는 팔레스트리나.몬테베르디.프랑크.스트라빈스키.펜데레쯔키 등등의 종교음악을 들어봐야 한다.
   요즈음 이데올로기 비판서적 출판 허용에 이어 공산권 국가의 순수 음악 라이센스 레코드의 수입 및 국내 판매가 정부에 의해 허용됐다는 보도가 나돌음에 따라 이에 대해 국내 음악 전문가는 물론 애호가 사이에 긍정적인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이로써 우리는 체코.폴란드.헝가리.소련 등의 교향악단이 연주하는 드보르작.프로코피에프.쇼스타코비치.하차투리안.펜데레쯔키.루토스와우스키.리겟티 등등을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지금까지 스토코프스키.오먼디.번스타인.뵘.카라얀 등등의 연주만 흔히 들어 왔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음악, 새로운 스타일의 연주에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드디어 왔다고 생각되며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는 보다 넓게 보다 깊게 음악을 섭취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의 레코드 산업이 발전되기를 바란다.

   사티.스크리아빈.레거.쇤베르크.베베론.바레즈.루셀.빌라­로보스.차베스.히나스테라.베리오.크세나키스.시톡하우젠.리겟티.펜데레쯔키.루토스와우스키.테리­라일리.부솟티 등등의 레코드에 못지 않게 우리나라의 춘향가.심청가.흥부가.수궁가.적벽가.남창가곡.여창가곡 등등도 또한 완주에 의한 전곡이 우리나라에서 출반될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외국 라이센스 레코드 전문(?)인 레코드 산업계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함으로써 우리나라 연주가에 의해 국악.동양음악.서양음악을 비롯하여 한국 현대음악 레코드까지도 생산하는 날이 올 때에 한국음악의 미래는 밝아 올 것이다.


<계간 레코드음악」 83.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