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교회음악인 부재시대
--60년대의 교회음악의 결집--

나  운  영

   1885년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등 두 선교사가 서울에 들어와 기독교를 전파한 이래 찬송가가 보급되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창설됨으로써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서양 음악의 기초가 닦아졌다.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의 우리나라 양악계를 5기로 나눈다면 다음과 같다.
        1. 유입기 - - - 1885~1910
        2. 태동기 - - - 1910~1919
        3. 요람기 - - - 1920~1929
        4. 정착기 - - - 1930~1945
        5. 성장기 - - - 1945~1969

   그런데 우리나라 양악계는 곧 우리나라 교회 음악계를 의미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대선배 음악인들이 모두 교회에서 양악을 배웠던 관계로 교회 음악을 항상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 음악계에 있어서도 신음악 80주년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이제 70년대를 앞두고 60년대의 과거 10년간의 교회 음악을 총정리함에 있어서 나는 소위 교회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즉 과거 10년간을 결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과거 80년간을 결산한다 하더라도 이렇다 할 내세울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첫째로 우리나라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교회 음악인이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교회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일급 음악인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음악인 가운데에는 교회에서 음악을 배워 출세한 뒤에 교회를 졸업해 버린 자와 실력없어 사회적인 음악 활동을 하지 못해 교회음악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연주하고 있는 자와 아마튜어(성가대 지휘자·반주자)의 세 가지 부류가 있다고 생각되므로 통칭 교회 음악인은 많으나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교회 음악인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 음악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발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한심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로 한국 교계는 교회 음악에 대한 이해가 너무도 부족하다 예배에 있어서 그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음악에 대하여 올바른 인식을 못하고 있어 성가대는 교회에 있어서의 하나의 악세사리로 또는 선전도구(?)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 교회가 많기 때문에 성가대 지휘자나 반주자도 구태여 음악 전문가를 둘 필요를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따라서 옛날과는 달리 요즈음은 성가대의 수준이 도리어 사회나 학교 합창단의 수준보다도 뒤떨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찬송가에 관한 문제인데 1896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찬송가가 출판된 이래 1967년에 비로소 우리 작품이 27편이나 섞인 개편 찬송가가 나온 것은 그야 말로 획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올림픽 경기에 참가하는 데에만 의의가 있는 것 같이 우리가 지은 찬송가가 27편이나 섞여 있다는 데에만 의의가 있을 뿐 실제로 널리 불리어지는 곡은 3,4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근본 원인이 작사 작곡과 선정 방법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지었다고 해서 반드시 모두 한국 찬송가라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한국 냄새가 풍겨야만 한국 찬송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인데 너무도 서양 찬송가와 대동소이한 곡, 서양 찬송가를 서투르게 흉내낸 곡, 기법이 미숙한 곡들이 태반이나 즐겨 불리어질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리 작품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선곡과 가사 번역에 있어서 신중을 기하지 못한 관계로 곡에 있어서는 그리 애창되기 어려운 멋없는 곡이 많고 가사에 있어서는 가사 자체가 시적이 아니어서 부를 맛이 없기 때문에 도리어 이로 인해 예배 때 혼란만 가져 오는 실정이니 졸속을 피해야 한다는 말을 교훈 삼아 앞으로 또다시 이런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넷째로 연주면에 있어서 「오라토리오 합창단」을 비롯해서 「필그림 합창단」,「서울 코랄」등의 합창 활동이 있으나 예전의 「시온성 성가단」 ,「성종 합창단」 등에 비하면 그리 눈에 띌만한 활동을 못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아쉬운 느낌을 준다. 여기에는 합창단 운영난은 물론 보수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합창단을 확보하기가 어려운 데에 주요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중에서도 「기독교 예술 축전」(1967년)에서 연합성가대에 의해 오라토리오 <천지창조>(하이든 작곡)가 연주되었고(영락교회 성가대)에 의한 「한국 작품」이 연주되었고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학생들에 의해 오페라 <노아의 홍수>(브리튼 작곡)가 초연되었고 한편 「연세대 콘서어트 콰이어」의 세계 합창제 참가 연주와 또한 「제 1 회 서울 음악제」에 있어서의 「필그림 합창단」,「서울 코랄」 ,「오라토리오 합창단」, 「아가페 합창단」의 참가 연주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다섯째로 창작면에 있어서 박재훈, 구두회 및 필자의 작품이 발표된 것은 빈약한 교회 음악계를 위해서나 불모지를 연상케 하고 있는 작곡 분야를 위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음악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큰 경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동안 박재훈 작곡의 <시편 150편> <시편 130편>과 구두회 작곡의 <새 노래로 주께 찬양하라> <너희 눈을 높이 들어라>와 필자 작곡의 <부활절 칸타타> <교향곡 제 7 번>(성서)등이 발표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 곡들이 모두 한국적이거나 현대적이었을까에 대해서는 논의할 여지가 많을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이 작품들이 한국적이거나 현대적이 아니고 그야 말로 [Poor Western Style]이란 말을 듣게 될까 두렵기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순 서양 고전적 스타일로 되었다든가 또는 멜로디와 리듬은 한국적 내지 동양적인데 화성이 서양 고전 화성으로 되어 있어 마치 갓 쓰고 양복 입은 격이 되었다든가 하는 평을 듣게 된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작곡자들의 기법이 미숙한 탓이 될 것이니 더욱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한편 작곡자들은 <칸타타> 뿐만 아니라 한국적인 교회 독창곡 찬송가를 많이 작곡하여 교회 음악의 토착화와 성가를 통한 국제 교류에 온갖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크리스찬 신문 1969.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