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한국교회 선교 백년 과제
-교회음악의 정립 문제-

나  운  영

   머지 않아 개신교 선교 100 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우리나라 교회음악계의 과제는 과연 무엇일까?
   1885년 부활주일에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제물포에 상륙하여 서울에 들어와 복음을 전파한 이래 찬송가가 보급됨으로써 양악의 기초가 닦아졌으니 우리나라 양악계는 곧 교회음악계를 의미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교회음악의 정립을 위해서는 과거를 회고하거나 현재에 만족할 수만은 없다. 첫째는 아직도 토착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즉 양악의 테두리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가 들어봐도 서양 사람의 작품으로 착각할 수밖에 없는 고전파적 내지 전기 낭만파적 기법에 의한 습작(?)에서 탈피함으로써 우리의 멋과 맛이 풍기는 교회음악이 많이 나와야겠다. 동방3국에 있어서 한국의 성가임을 직감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만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구태여 나는 여기서 기법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으나 반드시 타령이나 굿거리 장단을 써야만 한다거나, 5음음계만으로 멜로디를 만들어야만 한다거나, 근대화성을 써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 서양의 온갖 기법을 다 활용해서라도 한국적인 색채가 짙은 곡이 많이 나와 이를 통한 국제 교류가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말이다.
   둘째는 아직도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즉 양악에 있어서의 고전파적 내지 전기낭만파적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감각적으로 매우 낡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누가 들어봐도 18세기 서양 사람의 작품으로 오인될 수밖에 없는 낡은 양식에 의한 습작(?)에서 탈피함으로써 20세기 후반기의 한국사람의 작품임을 직감할 수 있는 작품이 나와야만 의의가 있지 않겠는가? 불협화음을 많이 쓰면 경건한 맛이 안 난다거나 무조적인 멜로디나 복잡한 리듬을 쓰는 것은 교회음악의 타락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편견인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옛날 스타일의 것만이 교회음악이 아니며 현대인이 공감할 수 있는 교회음악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찬송가 통일 작업에 있어서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 작곡한 우리의 찬송가가 되도록 많이 수록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남의 나라의 찬송가만 부르고 만족해야 할 것인가? 물론 남의 나라 특히 서양 찬송가에도 은혜스러운 곡은 얼마든지 불러야 할 것이나 우리의 생리에 맞는 우리 찬송가를 되도록 많이 수록해야 할 것이다. 개편찬송가에 들어 있는 27편의 우리 찬송가 중에는 비교적 잘 불리어지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 교회에서 즐겨 부르는 까닭이 무엇인가? 우리의 신앙 체험에서 우러나온 찬송가에서 보다 더 많은 은혜를 받는다는 증거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우리나라 사람의 작곡이 1편(임배세 작곡 금주가)밖에 들어 있지 않은 「합동찬송가」와 1편 조차도 들어 있지 않은 「새찬송가」와 27편이 들어 있는 「개편찬송가」에 이어 온 교계의 염원인 새로 나오게 될 「통일찬송가」(가칭)에는 백보를 양보해서라도 최소한도로 100편은 우리 찬송이 수록되어야만 온 세계에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게 될 것이 아니겠은가? 동양3국에 있어서 중국이나 일본 찬송가에는 그들의 찬송가가 상당히 많이 들어 있는 것을 볼 때 선교 100주년에 100곡쯤 수록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통일찬송가」에 살아 있는 작사자 작곡자의 우리 찬송을 넣는 것을 기피하려 드는 것은 한국 교회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일이라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니며 더욱이 만약에 살아 있는 작사자 작곡자의 것을 제외하자는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면 곡조에 있어서는 고 장수철 이동훈의 것 밖에는 실릴 수 없게 되니 곡조 수가 20여곡도 채 못될 것이며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작곡집(?)이 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쯤 되면 통일찬송가에 실려지려면 우선 하루 속히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되니 이는 언어도단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극단적인 편벽된 생각을 버리고 문호를 개방하되 작품 자체를 엄선하여 수준급의 찬송가 즉 토착화된 작품이라면 100편 이상 얼마든지 수록하도록 힘써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선교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아직까지도 이런 기본적인 것을 논의한다는 것 그 자체부터가 매우 부끄러운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합동, 새, 개편찬송가의 전철을 밟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선교 100주년의 결실을 세계 만방에 자랑할 수 있는 교회음악계가 될 수 있도록 작곡가는 작곡에 연주가는 연주에만 전념하는 올바른 풍토가 하루속히 조성되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지금부터라도 절대로 늦지 않았으니 한국교회 음악계는 우선 <뿌리>를 찾아야 한다. 나의 지론인 <선토착화 후현대화> 즉 한국적인 아이디어에 현대적 스타일이 결부될 때에 비로서 국제성을 띤 찬란한 민족 예술이 창조될 수 있는 것이다.

<교회연합신보 1978.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