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서양음악의 수용.모방단계에서 벗어나자
- 선교 110주년을 기하여 -

나  운  영

   1884년에 알렌, 1885년에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입국하여 기독교(개신교)가 전파된 이래 찬송가가 보급되고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이 창립됨으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서양음악의 기초가 닦아졌으니 이 나라의 양악계는 곧 교회음악계를 의미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1880년대의 김인식, 이상준, 김형준,홍난파가 모두 새문안교회의 집사(1917년도)였던 관계로 교회 음악을 항상 주도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요즈음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 협의회」의 음악분과 위원장 일을 맡아 보면서 위의 정설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한국 서양 100년사는 한국 교회음악 100년사를 의미하는 것일까? 누가 감히 자신을 가지고 이와 같이 말할 수 있을까…

   여명기에 있어서 교회음악이 학교음악 사회음악을 선도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즉 위의 원로들을 비롯하여 1900년대의 박태준. 안기영. 현제명. 박원정. 계정식. 김세형. 박태현. 임동혁. 김영의 이흥렬 등과 1910년대의 이유선. 채선엽. 이영세. 김성태. 김생려. 조활용. 서수준. 김동진. 이인범. 최성진. 김기우. 정상록. 이창식. 장수철. 김대현. 신재덕. 김자경. 이동일. 이관옥 등과 1920년대의 김천애. 김노현. 이남철. 구두회. 유경손. 나운영. 이동훈. 박재열. 조상현. 김의작. 곽상수. 김두완. 이동범. 김옥자 등등이 성가대 지휘자, 반주자, 또는 독창자, 독주자로서 교회음악의 발전에 직접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리하여 그동안 연주계는 오라토리오 <메시아>(헨델)를 비롯하여 오라토리오 <천지창조>(하이든),  오라토리오 <엘리아>(멘델스존),  칸타타(바하), 흑인영가 등을 즐겨 연주해 왔고 작곡계는 오페라 <에스더>(박재훈) ,<부활절 칸타타 >,<크리스마스 칸타타>(나운영)를 비롯하여 10여편의 성가 독창곡과 100여편의 찬송가 등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질적으로 볼 때 작곡계는 아직도 서양 고전파 내지 전기 낭만파 음악의 모방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닐 줄로 생각되며 한편 출판계는 그야말로 서양 고전 음악의 무비판적인 수용 단계에서 방황하고 있는 실정이니 이러고도 교회음악이 학교음악 사회음악을 주도 선도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교회음악인들이여! 마땅히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 오늘날 우리 교회음악은 학교음악 사회음악에 비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너무도 뒤떨어졌다.
  ○ 이미 체질화된 3도화성(Tertian Harmony)에서 탈피해야 한다.
  ○ 서양 음악의 수용 모방 단계에서 과감히 벗어날 때가 되었다.
  ○ 우선 우리의 뿌리를 찾고 이를 발전시킴으로써 우리의 현대적 음악어법으로 주를 찬양하자!
  ○ 우리나라는 결코 서양 교회 음악의 식민지가 될 수는 없다.
  ○ 리듬 멜로디 하모니에 있어서 우리의 맛과 멋이 물씬 풍기는 오라토리오나 칸타타를 우리 손으로 작곡하고 연주하고 출판함으로써 선교 100주년을 떳떳이 맞이하자!

 <계간 「교회음악」1983.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