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녹음기 인생

나  운  영

   8·15 해방 전에는 경성사범 출신이라고 하면 으레 수재를 의미했다. 즉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 이 학교를 졸업했으니 그 때의 교사들은 모두 수재였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는 수재의 대명사로 불리어질 수 없을 듯한 자가 상당히 있는 모양인데 그 까닭이 무엇일까? 혹자는 옛날의 사범학교보다 오늘날의 교육대학이 입학하기가 쉬워졌다든가 또는 소위 수재들이 대체로 일반 대학을 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 교사들에 비하여 오늘날의 교사들은 사명감과 소명감이 희박하여 가르치는 것을 생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매년 같은 학년을 맡는 교사의 경우 첫해만은 가르치기 전에 준비가 필요하지만 다음 해부터는 별로 준비가 필요없고 전 해에 했던 것을 되풀이하면 된다고 생각하여 마치 녹음기를 틀어 놓듯이 되풀이하게 되니 이쯤 되면 교사가 아니라 녹음기 인생이 되어 버린다. 교사는 열과 성의로써 어린이들을 가르쳐야 하고 그들에게 지식 뿐만 아니라 교사의 인격까지도 함께 불어넣어 주어야 하는데 그야말로 무사안일주의에 빠져 녹음기 인생이 되어서야 될 말인가?

   특히 초등학교 교사는 종합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국어, 산수 등 일반 학과는 누구나 잘 가르치나 음악, 미술 등 예술 과목은 그렇지 못한 법인데 어린이들은 담임 선생님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게 되므로 교사는 종합 예술가가 되어 예능 과목까지도 능숙하게 가르칠 수 있는 자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고한다면 나의 담임 선생님들은 모두가 음악가 못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에 그 선생님들에게서 나는 음악을 올바르게 배웠고 또 그 분들이 나의 소질을 일찍 발견해서 키워주신 것이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그랜드 피아노로 [내쇼널 가아드 마아치]를 들었고 바이올린 연주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청음 훈련을 받았는데 그 때 나는 전교에서 노래를 제일 잘 불렀고 <음정 잘 알아 맞추기>는 아예 나의 독무대였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작곡가가 되라고 말씀하셨고 나도 작곡가가 될 결심을 그 때부터 하게 되었던 것이다. 대체로 사람에게는 네 가지 타입이 있는데 첫째는 "재학 시절이나 졸업 후나 변함없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 둘째는 "재학 시절에는 열심히 공부했으나 졸업 후에는 전혀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 셋째는 "재학 시절에는 별로 공부를 안 했으나 졸업 후에 굉장히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 넷째는 "재학 시절이나 졸업 후나 변함 없이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 이 네 가지 타입 중에 여러분은 어디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교사가 되려면 첫째 타입이 바람직하지만 둘째보다는 셋째가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즉 부지런히 공부하면서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사는 어린이들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가르쳐야 하며 자기 나름 대로의 새로운 교수법을 항상 발견하여 그것을 실천에 옮겨야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는 법이다. 한 시간의 수업은 한 시간의 연주와 같으므로 어린이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그들의 마음을 완전하 사로잡아 재미있게 가르쳐야 한다.
   수업시간에 어린이들로부터 질문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머지 질문하는 어린이를 미워하거나 아예 질문을 못하도록 억제해 버리는 교사는 교사가 아니다. 언제 어떤 질문이 나와도 염려 없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교사가 되어야 하고 오히려 질문을 유도한 다음에 여유 있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실력자가 되어야 한다.
   까다로운 이론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기술이다. 왜냐하면 까다로운 이론을 어렵게 설명하면 점점 더 모르게 되기 때문이다. 교사는 모름지기 어린이들이 모르는 점이 무엇인가를 미리 알고 그 장애물을 먼저 제거시켜 주면 모든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되게 마련이다.

    "한 시간의 수업은 한 시간의 연주와 같다"고 나는 앞에서 말했다. 연주가가 같은 곡을 수십번 연주함에 있어서 어떤 때에는 만족스러운 연주가 되어 연주자 자신부터가 감동을 받는 수가 얼마든지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사도 수업이 잘 될 때와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잘 안된 이유가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해 보라 거기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을 해결해 놓은 다음부터는 언제 어디서나 감동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게 된다. 교사가 감동을 맛보며 가르칠 때 온갖 피곤과 잡념은 사라진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직업이 아니고 예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사명감과 소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는 기술자로 그쳐서는 안된다.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엘만, 하이펫츠, 시겟티 등을 길러낸 레오폴드 아우어 교수는 일찍이 말하기를 <기술이 끝난 데서부터 예술은 시작된다>라고 했다 똑같은 결과만을 가져다 주는 기계적인 수업에서 탈피하여 되풀이할 때마다 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예술적인 수업을 하는 교사가 많이 배출되기를 나는 바란다.
   끝으로 교사는 목사, 음악가, 의사, 약사, 간호사와 함께 성직자이다. 이 성직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고 항상 불만을 품고 팔자를 고쳐보려고 기회를 엿보는 자들은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요 불쌍한 사람이요 녹음기 인생이다. 이 모든 성직 가운데 어린이의 재능과 지능을 발굴 개발시켜 주는 초등학교 교사야 말로 대학원이나 대학의 교수보다도 더 고귀한 성직임을 깨닫고 긍지를 가지고 보람찬 인생을 살아 나가기를 바란다.

  <월간 「교육자료」 1977.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