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외로운 배 한 척

나  운  영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
만경창파  망망한 바다에
외로운 배 한 척이 떠나가니
아 위태하구나


   이 가사로 작곡된 합동찬송가 195 장은 거의 불려지지 않고 있고, 개편찬송가 321장은 가사와 곡조의 리듬이 잘 맞지 않아 별로 보급되지 못하고 있어 이 가사를 가지고 2년전 나는 제주도 여행 중 민속적인 멜로디와 이에 잘 어울리는 화성을 붙여 새로 작곡한 일이 있다. 이제 내가 구태여 이 찬송가 가사를 인용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며칠 전 나는 음악과 신입생 환영회 때에 즉석 연설을 통해 대략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대양(大洋)'은 우리 대학 이사장이신 주영하 박사님의 아호인데 이는 큰 바다라는 뜻이니 이를테면 우리 세종대학은 마치 망망한 바다 한 복판을 항해하는 [외로운 배 한 척] 같고 교직원과 학생 여러분은 이 배에 탄 선원과 선객과도 같다. 따라서 우리는 공동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서로 믿고 의지하고 돕고 사랑해야만 멋진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34년째 대양을 향해 유유히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우리 세종의 목적지는 과연 어디이며 또한 그 목적 자체는 무엇인가?」 (이하 생략)
   좀 무식한 발언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나에게는 한국 사람이 평생 사업으로 서양사나 서양 철학을 연구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뭔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그 보다는 우리가 연구해야 할 과제가 동양사, 한국사요 동양 철학, 한국 철학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의 경우에 우리나라에 있어서 서양화 전공, 동양화 전공은 있으면서도 한국화 전공이 없다는 것은 뭔가 잘못된 일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음악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음악 콩쿠르>에 있어서 작곡 부문이 서양 음악 작곡과 국악 작곡으로 엄연히 구분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너무도 부자연스런 느낌을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음악인이 소위 양악인과 국악인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도 기이한 현상이라 아니할 수 없는데 그 원인이 무엇일까? 본래 기독교의 복음과 함께 서양 찬송가가 이 땅에 들어온 까닭에 음악이라고 하면 으례히 서양음악을 지칭하는 것으로 되어 버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서양 음악만을 줄곧 가르쳐 왔고, 동양 음악 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형편이고 보니 한국 음악에 대해 아예 외면해 버리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끔 된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음악교육은 근본적으로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우리는 첫째로 한국 음악을 가르치고 둘째로 동양 음악을 가르친 뒤에 셋째로 서양 음악을 가르쳐야 된다는 것을 극력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음악에 있어서 주체성을 먼저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선토착화 후현대화>는 나의 40년 전부터의 지론이다. 교회음악이나 세속음악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음악은 먼저 토착화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현대화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성을 띤 한국의 민족 음악이 창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우리나라의 음악대학의 모집 학과에 눈을 돌려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는 대체로 성악과, 기악과, 작곡과, 교회음악과 또는 성악과, 피아노과, 관현악과, 작곡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상례인데 이에는 많은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로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국악 이론이 - 화성학, 대위법, 악식론, 관현악법, 작곡법 등 - 작곡학적으로 체계화되지도 못한채로 국악과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국악은 실기만을 주로 가르치고 이론은 서양 이론을 그대로 가르치는 등 변칙적인 교육을 하고 있으니 그 자체가 모순이고, 둘째로 교회 음악과에 성악 전공과 오르간 전공을 두고 있으나 신학 과목을 별로 가르치지 않는 것도 잘못이고, 셋째로 피아노과를 독립시켜서 대량으로 모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이보다는 음악과, 기악과, 작곡과, 악리과로 나눠서 가르치되 성악과에서는 국악에 있어서의 가곡, 판소리 등과 교회음악에 있어서의 오라토리오, 칸타타 등을 함께 가르친다든가, 기악과에서는 국악에 있어서의 가야금, 거문고, 대금 등과 교회음악에 있어서의 오르간을 함께 가르친다든가, 작곡과에서는 국악, 교회음악을 함께 창작하게 하고 악리과에서는 음악사, 음악미학, 비교음악학, 음악교육학 등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옳다고 나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구태여 국악, 교회음악, 피아노를 독립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상 오늘날 국악과, 교회음악과를 지망하는 학생들 중 진정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이 과를 지망하는 학생이 매우 드문 실정임을 감안할 때 하나의 과로 독립시키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닐 줄로 안다. 아울러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독립시킬 이유는 하나도 없으니 차라리 오늘날의 우리나라 교회의 형편을 참작하여 오르간 전공생과 피아노 전공생을 반반 모집하거나 혹은 오르간 전공생을 더 많이 모집하는 편이 도리어 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교회마다 전자오르간은 갖추어 놓았으나 패달이나 스톱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오르간 전문가가 절대로 모자라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국악이나 교회음악이나 오르간에 관한 문제점이 모두 시정된다 해도 이보다 더욱 절실히 요망되는 것은 악리과라고 나는 단언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악리과가 설치된 대학이 없기 때문에 비전문가들이 강의를 전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외국에서 전공하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느 대학에서나 음악사, 음악미학을 가르치고 있는데 전문적으로 가르칠 사람이 몇 명(?)밖에 없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음악대학은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 앞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우리 세종대학은 위에서 지적한 여러 가지 모순을 과감히 시정함으로써 다른 대학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이상적인 - 한국의, 한국에 의한, 한국을 위한 - 음악대학이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남이 안하는 일, 남이 못하는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외로운 배 한 척>과도 같이 느껴질지도 모르나 신념을 가지고 새출발을 할 때 우리 앞에는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이 분명하다.
   나는 위에서 선토착화 후현대화를 역설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배외(排外)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배외(排外)사상은 분별없는 배외(拜外)사상보다도 더 위험한 사상임을 알아야 한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하시고 더욱이 악성 박연선생으로 하여금 국악을 정리 발전시키게 하신 그 본 뜻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즉 이것이야말로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토착화의 효시가 아니고 또 그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다시 한번 기리면서 이 유업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더욱 힘써야겠다.

   끝으로 세종인은 어디까지나 학문과 예술을 통한 사회참여만이 나라를 사랑하는 길이요, 나라를 구하는 길이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세계 문화에 기여하는 길임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할 때가 바로 이 때임을 알라.


 

      모진 바람, 또 험한 큰 물결이
      제 아무리 성내어 덮쳐도
      권능의 손 그 노를 저으시니
      오 맑은 바다라 맑은 바다라


  34년 동안이나 우리 세종대학을 지켜 주시고 키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면서 또다시 망망한 바다 - 대양을 향해 위대한 전진을 다짐하는 세종의 앞날에 영광이 있으라.

 <세종대학보 81.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