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피아노 레슨의 현실적 문제점
- 소경이 정상인을 인도할 수 있을 것인가?

나  운  영

   우리나라 속담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말이 있다. 「소경인 선생님이 소경인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란 뜻이라고 짐작이 되는데 나는 이 말을 조금 바꿔 말하게 되는 것을 슬프게 생각한다 즉 「소경이 정상인을 인도한다」라고. 다시 말해서 「소경인 선생님이 소경 아닌 학생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느냐?」란 뜻이다.
   나는 특히 <청소년 음악 콩쿠르>의 심사를 할 때마다 「소경이 정상인을 인도한다」라는 말을 재확인하면서 <피아노 레슨의 현실적 문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늘 고민해 왔다.

   1. Tempo가 정확하지 않은 연주 - - -. 무의식적으로 아첼레란도 (Accelerando) 또는 리타르단도 (Ritardando)하거나, 트릴 (Trill)을 정확하게 연주하기 위해 박자를 무시하거나, 느린 곡을 상식 밖으로 너무도 빠르게 연주하거나, 절대로 템포 디 루바토 (Tempo di rubato)가 아닌 비정상적인 광적(?) 연주, 쉼표를 빠뜨리고 연주하거나 아예 템포 관념이 없는 연주 등등을 말한다.
   2. Scale과 Arpeggio와 Cadence의 연습이 부족한 연주 - - -. 스케일을 박자 안에서 정확하게 연주하지 못하거나, 스케일이 박자와 관계없이 미끄러지는 연주, 아르페지오나 케이던스에 있어서 음이 자주 틀리는 연주 등을 말한다.
   3. 무미건조한 연주 - - -. 강약, 속도의 변화가 없게 연주하거나, 특히 발상표에 신경을 쓰지 않고 무조건 기계적으로 연주하는 것 등을 말한다.
   4. 곡을 외우지 못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연주 - - -. 중단하거나, 말 더듬 듯 더듬거나, 중단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연주 등등을 말한다.
   5. 한 악장을 중도에서 그쳐 버리는 연주 - - -. 가령 소나타 형식인 경우에 제시부까지만 연습하는 속임수를 말한다.
   이상 다섯가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설명하려 한다.

   1. 템포가 정확하지 않은 것은 메트로놈에 맞추어 손가락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해결될 수 있다.
   음악영화 <랩소디>에 나오는 피아니스트 모양으로 처음에는 배 이상 느리게 그러나 철저히 연습한 다음에 제 속도로 빠르게 연습하면 된다. 만약에 메트로놈이 없을 때에는 왼발로 박자를 셀 수밖에 없는데 가령 0박자에 있어서 1.2.3.4박을 모두 발로 셀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1마디를 두 박으로 세고 좀 익숙해지면 1마디를 1박으로 세고 나중에는 2마디를 1박, 4마디를 1박으로 세는 훈련을 쌓으면 자연히 발로 박자를 세지 않아도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즉 "연주가는 박자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렇게 해서 손가락 연습이 끝나면 메트로놈 없이, 또는 발로 세지 않고 속도 변화는 물론 강약, 변화, 발상 등을 연습하면 된다.

   2. 스케일과 아르페지오와 케이던스의 연습이 부족한 것은 먼저 무슨 장조(또는 단조)인지 알고 스케일 연습을 해야 하고 다음에 무슨 화음인지를 알고 아르페지오나 케이던스를 연습하면 된다.
   즉 자기가 연주하는 곡이 무슨 조인지, 무슨 화음인지도 모르고 연습하면 틀리고도 틀린 줄 모르게 되니 이런 경우에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허사가 된다. 조와 화음을 모르고 연습하는 것은 마치 초등학교 어린이가 뜻도 모르고 한글로만 쓴 철학책을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3. 무미건조한 것은 목소리로 또는 마음속으로 노래를 하면서 연습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해결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악보를 읽는데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박자표와 음표만 골라 내어 읽는 재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외국 사람들은 악보를 읽을 때에 강약, 속도, 발상, 잡기호 등등을 빼놓고 읽을 줄을 모르는데 우리는 이런 기술(?) 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음악적인 연주를 하는 방법 또는 음악성을 기르는 방법의 하나로는 명연주가의 실제 연주 또는 레코오드를 비교 감상하는 것이 가장 좋으나 때에 따라서는 서투른 연주를 듣는 데서 더욱 공부가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녹음기가 흔하니 자기의 연주를 녹음한 다음에 좀 더 자세히 악보를 읽으면서 자기 자신이 판단하는 방법도 권할 만 하다.

   4. 곡을 외우지 못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즉 '어째서 곡을 외우지 못하느냐?' - - - 그 이유가 무엇일까? - - -. 이는 머리가 나쁜 까닭이 아니요 손가락 연습이 덜 되어서도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머리로 곡을 외우지 않고 손가락으로만 외우기 때문이라는 점을 나는 지적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자기가 연습하는 곡의 조성은 물론이고 화성과 형식을 분석한 다음에 리듬, 멜로디, 하모니 형식을 머리에 기억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 하기야 연습하면서 기억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가장 틀림없는 방법은 '머리로 완전히 외운 다음에 연습을 시작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미 60년 전에 피아니스트의 거성 박경호 선생은 미국 신시내티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이화여전 음악과에서 가르칠 때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신시내티 음악학교에서는 학생이 피아노 시험을 치르려면 먼저 악보를 외어서 적어 내야만 시험 치를 자격을 준다고"  - 이 얼마나 고약한 제도일까  -.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지금 이 제도를 실시한다면 피아노 시험을 치를 수 있는 학생은 아마도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라고 해도 조금도 지나친 말이 아닐 줄로 나는 생각한다. 즉 리듬, 멜로디, 하모니, 악식을 머리에 완전히 외지 못한 채 손가락만으로 연주를 하니 거의 끝까지 갔다가도 곡조를 잊어 버리면 -- 어디까지 왔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불가불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면서 그 멈췄던 곳에 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리지 않고 잘 넘어가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 외국 사람의 경우에는 만약에 순간적으로 곡조를 잊었을 때에는 바로 멈춘 그 자리부터 즉시 연주를 시작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니 우리가 너무 양심적(?)인 때문일까 …. 우리나라 사람은  청음(Ear training) 실력이 외국 사람에 비해 놀라울만큼 뒤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함일까? 우선 귀로 듣고 리듬, 멜로디, 하모니를 판단 못하는 데다가 훈련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폭언일까 ….

   5. 한 악장을 중도에서 그쳐 버리는 것은 곡의 형식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줄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소나타 형식의 곡을 연주할 때 제시부까지만 연습하는 악습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퍼졌는지 모르겠다. 흔히 콩쿠르 또는 학교에서의 실기 시험 때 시간 관계로 제시부까지만 듣고 채점하는 데서 생긴 부산물인 듯 싶은데 이것을 악이용하는 셈이 되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다시 말해서 소나타 형식에 있어서 발전부는 물론 재현부 끝까지 연습하는 양심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중단하는 것은 작곡자에 대한 모독이요, 또한 곡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나타나 조곡의 경우에 전악장을 모두 연주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피이스(Piece)가 아닌 이상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당연하다. 흔히 느린 악장은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연습하지 않고 빠르거나 화려한 악장만 골라서 연습하는 것은 잘못이다. 심오한 느린 악장이야 말로 가장 음악적인 악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피아노 레슨은 손가락 연습으로 시작해서 손가락 연습으로 끝나서는 안 될 말이다. 먼저 화성 분석과 형식 분석은 물론 주제 분석을 통해서 What - HOW - why를 분명히 한 다음에 이를 머리로 완전히 외어야 하고 그 다음에 연습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예를 들어 화음의 경우에 첫째로 무슨 화음인지? (What), 둘째로 그 화음은 무슨 음과 음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How), 셋째로 작곡자는 왜 그 화음을 그 곳에 사용했는지? (Why)를 철저히 캐내야만 작곡자의 의도를 충분히 알고 연주할 수 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모두가 깊이 반성해야만 문제점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 월간 「피아노음악」 1983.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