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나를 움직인 교향곡 '운명'

나  운  영

   여섯 살 때의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사랑방에 몰래 몰래 들어가 보니 유성기와 유성기판이 있었다. 몇 가지 안 되는 곡 중에서 내가 처음 들은 서양음악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그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감격했다. 생전 처음 교향곡을 들었기 때문이다. 스테레오나 하이파이도 아닌 -코맹맹이 소리인 S.P.소리였지만 나는 그 음악의 포로가 되어 하루에도 열 번씩은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판은 프란쯔 샬크(Franz Schalk, 1863~1931)가 지휘한 것이었는데 푸르트뱅글러, 토스카니니, 카라얀 등의 연주도 좋지만 웬일인지 나에게는 샬크가 더 애착이 간다. 아마 어렸을 때의 깊은 인상 때문인가 보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나는 줄곧 「운명」을 들어서 그런지 악보없이 들었지만 바이올린 파트, 첼로, 더블 베이스 파트는 물론 팀파니 파트에 이르기까지 거진 외우다시피 들었다. 이 「운명 교향곡」과의 만남은 결국 나를 작곡가로 만들어 버렸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나는 짤막한 멜로디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악기라고는 하모니카밖에 없었지만 열심히 분 탓으로 음감이 정확해져서 웬만한 노래라면 한 번 들어도 음정을 알아맞힐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한글을 알면 저절로 글짓기가 되듯이 비록 콩나물 대가리 악보는 아니었지만 숫자로 된 하모니카 악보로 기악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5학년 때에는 2백 마디가 넘는 제법 긴 멜로디를 썼다. 아마 교향곡(?)을 써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바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직접 영향일 것이다.
   일제 말기에 나는 다행히도 학도병으로 끌려가는 것만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소위 징용을 피하기 위해 현제명 선생이 이끄는 후생악단의 첼로 주자가 되어 전국 순회 공연을 다녔다. 그 때에 나는 김원복 선생님과 항상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제1악장부터 4악장 끝까지 노래하면서 길을 걸었다. 하도 많이 들은 곡이라 멜로디를 모두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서 막히는 일없이 노래했더니 김선생님께서도 꽤 신통하게 생각하셨던지 나만 보시면 「운명」을 같이 노래하자고 하셨다.
   2차 대전이 거진 끝날 무렵에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운명」의 유성기판이 날개 돋힌 듯 팔렸다. 나도 이 판을 사가지고 기대 가운데 들어보니 이것은 교향곡이 아니라 '팀파니 협주곡'같은 느낌이었다. 다이나믹스를 너무 강조한 탓으로 온통 팀파니 소리밖에 안 들리는 듯 했다. 뿐만 아니라 제2악장의 주제가 로맨틱하지 않고 마치 모래를 씹는 듯 맛이 없어서 크게 실망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샬크의 연주가 역시 나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는 현재 「운명」의 디스크를 30종 이상 가지고 있는데 뭐니뭐니 해도 푸르트뱅글러의 연주가 최고인 것만 같이 생각된다. 나는 나의 저서  『연주법 원론』에서도 밝혔지만 이 곡의 연주에 있어서 정평이 있는 푸르트뱅글러와 토스카니니의 연주를 비교해 볼 때 전자의 연주가 후자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음악적이라고 생각한다.
   「운명 교향곡」과의 만남은 결국 나를 교향악작곡가(?)로 만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나는 교향곡을 13편이나 작곡했기 때문이다. 정부 수립 10주년 기념 위촉 작품인 「교향곡 제1번(한국전쟁)」을 58년에 작곡한 이래 「제2번(1961)」,「제3번」,「제4번」,「제5번」,「제6번(탐라)」, 「제7번(성서)」,「제8번」,「제9번(산조)」,「제10번(천지창조)」,「제11번」,「제12번(남과 북)」,「제13번」을 작곡했는데, 「제5번」을 작곡할 때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했었다. 왜냐하면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제5번이기 때문이다. 내 나름 대로 좀 의욕적인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소위 음열기법(Serial technique)을 처음 시도해 보았고 5악장으로 작곡했는데 다른 작품과는 달리 80일이 소요되었다.
   일반적으로 교향곡을 쓰는 사람들은 제1번, 제5번, 제9번에는 많은 신경을 쓴다. 더욱이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도 넘지 못한 마의 아홉째 고개(제9번)를 넘긴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쇼스타코비치처럼 나도 제15번까지는 써야겠다.

<월간 「음악동아」 198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