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어머니의 십계명

나  운  영

   나는 여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애비 없는 호로 자식' 소리를 듣게 될까봐 어머니가 지나치게 신경을 쓰셨던 탓으로 나는 철저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생물학자요, 중앙고보 학감이셨던 아버지는 막내둥이인 나를 귀여워 하셨겠지만 나에게는 웬일인지 그저 무서운 존재였을 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할머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겨울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 따뜻한 손으로 꽁꽁 언 내 손을 녹여 주셨다. 그러시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나를 심하게 다스리셨다.
   첫째로 대문밖에 나가 놀지 못하게 했다. 대문을 나서면 전차, 자동차, 자전거가 다니는 큰 길이라 위험해서도 그러셨겠지만 그 보다는 나쁜 아이들과 사귈까봐 금족령이 내려진 것 같다. 그래서 언제나 집안에서만 놀았다.
   둘째로 욕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이 새끼'는커녕 '이 자식' 소리 한 번 내보지 못했으니 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기운으로 지는 것은 물론이고 입씨름에서부터 지고 마는 것이었다. '양반은 상놈처럼 욕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기에 고운 말을, 더군다나 어른에게는 깎듯이 존대말을 써야만 했다.
   셋째로 아무리 몸이 아파도 절대로 결석을 하거나 지각, 조퇴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동초등학교 6년과 중앙고보(중앙 중고등학교) 5년을 줄곧 개근했다. 특별히 보약을 먹었거나 운동을 많이 한 것도 아닌데 오늘날까지 감기 이외에는 앓아본 일이 없으니 이 모두가 규칙적인 생활을 한 때문인가 보다.
   넷째로 군것질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바로 옆집이 가게였건만 과자 한 번 사 먹지 못하고 자랐다. 용돈이란 받아본 일조차 없었기에 중앙고보 시절에는 매월 전차회수권 사라는 150전으로 몽땅 음악책을 사 모으면서 매일 매일 걸어다녔다.
   다섯째로 딱지치기, 화투놀이, 연 날리기, 제기차기를 못하게 했다. 항상 공부만 하라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유성기(오디오) 듣는 것만은 허락되어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은 유성기판이 헤지고 닳도록 듣곤 했다. 이것이 내가 음악을 전공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었던 것 같다.
   여섯째로 대문밖에 나갈 때에는 반드시 정복, 정모 차림을 해야만 했다. 밤중에 이웃집 불구경을 갈 때에도 급히 뛰어 나갔다가 돌아와서 모자를 쓰고 나갈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 여름에도 노타이 바람으로는 나다니질 못한다. 반드시 넥타이를 매야만 한다.
   일곱째로 교과서 이외에는 책을 못 보게 했다. 그래서 자습서는 물론 옛날 이야기책, 잡지, 소설책 한 권 못 읽고 중학 시절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만은 너무 하신 것 같지만 그 때는 별 불평 없이 순종했다.
   여덟째로 활동사진(영화) 구경을 못하게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단체로 구경시키는 경우를 빼놓고는 중앙고보를 졸업할 때까지 극장 구경 한 번 못했는데 믿지 않아도 좋다. 영화관에서나 T.V로 성인영화 또는 연속극을 매일 같이 보고 자라는 요즈음 어린이들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이야기가 아닌가---.
   아홉째로 절대로 술, 담배를 못하게 했다. 어렸을 때에는 우리 집이 기독교 가정도 아니었으니 술,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 무서운 해독이 된다고 해서 엄금했던 모양이다. 요즈음에는 여대생들까지도 술, 담배를 즐기는 모양인데 제발 때와 장소쯤은 가릴 줄 알아야 하고 또한 절제할 줄도 알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열째로 외박만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8·15 해방 직후 돈암동 종점에서 마포 종점까지 그 무거운 첼로를 끼고 밤중에 혼자 걸어서 돌아온 일까지 있었다. 막차를 놓쳐서 전차를 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과보호, 과잉 단속이 아니었나 싶지만 무조건 순종 아니 맹종을했기 때문에 패가망신을 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견디어 온 것이 아닐까?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라는 말이 있듯이 우선 수신부터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머니가 내게 강요하신 십계명이 참으로 적절했다고 생각되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교육에는 가정 교육, 학교 교육, 사회 교육이 있는데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가정 교육이다. 요즈음 세상에 학식은 있어도 교양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은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때문이다.
   "집에서 새는 쪽박이 밖에서 안 샐 리가 있느냐"라는 속담이 있는데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예의를 지킬 줄 알고, 남을 이해해줄 줄 알고,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할 줄 아는 아름다운 생활이 가정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때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정, 학원, 사회, 국가, 민족은 반드시 번성하리라.

   『'인격이 없다', '교양이 없다'는 말보다 '가문이 나쁘다', 가정 교육이 나쁘다'는 말을 나는 가장 모욕적인 언사라고 생각한다. 최고학부를 우등으로 졸업했으나  인격이 모자라는 사람이 많다. 이것은 가정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반대로 학교  문전에도 가 본 일이 없지만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 있다. 이것은 가정 교육을 잘 받은 탓이다. 물론 학교 교육, 사회교육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가정 교육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학교 교육이나 사회 교육에 있어서 항상 그 바탕이 되는 것은 가정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어머니의 십계명에 대해 나는 반항은커녕 그야말로 '이유없는 복종'을 하며 자랐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이런 것은 예의, 윤리, 도덕 등 도의 교육에 너무도 치중된 느낌이 없지 않다. 가정 교육에는 이 도의 교육 이외에도 종교 교육은 물론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술 교육이 절대로 필요하다. 즉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가 되려면 아니 인생의 참다운 맛과 멋을 알려면 예술을 이해할 줄 알아야 된다.』
   이상은 1963년 5월 8일자 동아일보에 실렸던 「가정 교육에 대하여」란 글에서 인용한 것인데 이것으로 결론을 지으련다.

<월간 「엄마랑 아기랑」 1985.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