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신음악81주년과 베토벤 탄생 200주년

나  운  영

   올해는 신 음악 81년을 맞이하는 해인 동시에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는 한국음악협회가 주최한 「제2회 서울 음악제」가 4일에 걸쳐 열렸으며, 한편 한국일보사가 마련한 「베토벤 대 음악제」가 대대적으로 열렸으니 그 수확이 컸다고 말해도 좋을 줄로 생각된다.
작곡
   작곡 분야에 있어서는 실내악곡으로 이성천 작곡의 「실내악을 위한 변주곡 제 2번」, 조복열 작곡의 「목관 4중주곡」, 이연국 작곡의 「현악 4중주곡 제 5번」, 유신 작곡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즉흥곡」,김현중 작곡의 「피아노 3중주곡」, 최동선 작곡의 「피아노와 관악을 위한 6중주곡」, 이상은 작곡의 「현악 4중주곡 제 2번」, 이영자 작곡의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 윤양석 작곡의 「현악 4중주곡 제 3번」, 김정양 작곡의 「첼로를 위한 소나타」, 함태균 작곡의 「현악 4중주곡」과,  관현악곡으로 한성석 작곡의 「교향곡 제 2번」, 정회갑 작곡의 「관현악 조곡」, 나운영 작곡의 「교향곡 제 9번」, 협주곡으로는 이경희 작곡의 「피아노 협주곡」, 합창곡으로 김순애 작곡의 「당신은 새벽에 나의 목소리를」이 제 2회 서울 음악제 때 초연되었고,  신영림 작곡의 「현악 4중주곡 제 2번」, 박판길 작곡의 「플루트 소나타」, 서우석 작곡의 「2중주곡」, 윤양석 작곡의 「바리톤과 3 악기를 위한 실내악 조곡 제 2번」, 박중후 작곡의 「플루트를 위한 가락」, 이상은 작곡의 「소프라노와 실내 합주를 위한 4계절의 여심」, 김정길 작곡의 「4개의 악기를 위한 엣세이」, 이성재 작곡의 「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 69」, 김원중 작곡의 「실내협주곡」, 김용진 작곡의 「4개의 소품」, 서우석 작곡의 「소품」, 성두영 작곡의 「마음의 수상」이 「창악회」를 통해 초연되었으며,  이인국 작곡의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시곡」이 서울 심포니에타 정기공연 때 초연되었고, 재미 작곡가인 김병곤 작곡의 「교향시곡 낙동강」이 서울 시립교향악단 정기공연 때 초연되었으며, 박재열 작곡의 「에밀레」와 이성재 작곡의 「스트럭처 1.2.3」이 서울 브라스 앙상불의 정기공연 때 초연되었다.
   한편 한성석, 김원중, 이영조, 허방자, 곽성현 등의 작곡 발표회가 있었다. 이와 같이 수 많은 작품이 발표되었으나 「서울음악제」는 대체로 서투른 연주로 말미암아 작곡자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으며, 「창악회」는 의욕적인 데 비하여 별로 알찬 수확이 없었으니 이는 작곡가들의 실력 부족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연주가들의 몰이해와 무성의가 크게 문제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연주
   연주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일보 주최 「베토벤 대음악제」와 「세계적 젊은 천재 음악가 특별 초청 음악제」를 통해 정명화, 정경화, 김혜주, 김영욱, 한동일, 김원모 등을 비롯하여 민초혜, 김남윤 등 그리고 세계적 대가인 리치, 그라프만, 슬렌친스카, 슈피러 드의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순열, 백낙호, 박정봉, 이경숙, 한동일, 황은영, 서계령, 루트비히, 상캉, 라이트, 데무스, 폰티 등의 피아노 독주회와 정희석, 이봉수, 현해은 등의 바이올린 독주회, 스타커의 첼로 독주회, 김대근, 김대진, 이순희, 조상현, 손윤열, 김금환, 김복희, 김옥자, 이동범, 서인석, 김성애 등 그리고 제일 교포 음악가인 남영우의 독창회를 들을 수 있었다.
   한편 국립교향악단 , 서울 시립교향악단, 서울 여성 스트링 오케스트라, 서울 브라스 앙상블의 공연과 김자경 오페라단의 「나비 부인」, 「아이다」, 국립오페라단의 「라 보엠」 그밖에 「카르멘」, 「리골렛토」 공연 등이 있었다. 이와 같이 수 많은 연주회가 있었으나 기억에 남는 것은 「베토벤 대음악제」와 「세계적 젊은 천재 음악가 특별 초청 대음악제」를 비롯하여 「아이다」 공연, 그리고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과 스타커, 리치, 데무스, 폰티 등의 연주라 할 수 있다. 특히 정경화 3남매와 서계령의 연주는 세계적 대가로서의 기틀이 충분히 마련된 느낌마저 주었으니 흐믓하기만 하다.

논평
   평론 분야에 있어서는 박용구, 유한철, 이성삼을 비롯하여 김형규, 이상만, 김기정, 김정길, 김무광 등이 글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방면에는 보다 전문가가 하루 속히 탄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왜냐하면 올바른 평론, 권위있는 평론, 교화적인 평론 없이는 악단의 정상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출판
   출판 분야에 있어서는 『만당문책론』, 김기정의 『음악통론], 세광출판사의 『한국 피아노곡집] 그리고 잡지 『월간음악]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음악잡지 하나 없는 우리 악단에 있어서 『월간음악」이 나왔다는 것은 진심으로 경하해 마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이 잡지의 성격, 편집 내용, 집필진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기 전에 우리 악단이 공동으로 키워 나가는데 힘을 기울여야겠다. 작곡도, 연주도, 평론도 좋으나 출판이 거의 없는 우리 악단의 장래는 근심스럽기만 하다. 책을 읽지 않는 음악인, 이론서적이 팔리지 않는 우리 악단을 생각해 볼 때 부끄럽기 한이 없다. 우리 음악인이 소위 '쟁이'를 면하려면 책을 읽어야 할 것이 아닌가. 출판 분야의 중흥이야 말로 곧 악단의 중흥, 음악교육의 중흥을 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밖에 음악인들의 특기할 동정으로는 윤이상, 우종갑, 이원웅, 백남준, 박준상 등이 해외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박민종, 윤기선, 성두영 등이 돌아왔으며 최인찬, 강석희, 백병동, 김정길 등이 독일 유학을 떠났다. 한편 김생려, 원경수, 홍연택 등이 일시적으로 돌아와 교향악계에 활기를 띠게 하고 있다.
   끝으로 동아음악콩쿨, 5·16음악콩쿨을 비롯한 각종 콩쿨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잡음에 잡음만을 남기고 있으니 이러다가는 콩쿨 무용론까지 대두될 날이 오고야 말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겠다는 뜻을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파리음악원」의 콩쿨이 순전히 외부 인사만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에 의해 집행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콩쿨도 외국의 저명한 음악가만에 의존해야 된다고 한다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일까. 그러나 콩쿨을 바로 잡으려면 결국 이 길밖에 없지 않을까. 오늘날과 같이 금력으로 좌우되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콩쿨을 그저 보고만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한편 한국음악협회 주최 제2회 한국음악인대회에서 크게 논란이 있었던 소위 '국민가요 파동'에 대해서 우리 음악인은 '좋은 노래 바로 부르기 운동'에 모두 앞장서야겠다.

<「독서신문」 1970.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