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일제하 음악교육의 문제와 오늘날 당면한 과제들에 대한 논평

나  운  영

   주제 발표자(이상만)는 머리말에서 <시의에 편승해서 단순히 배일감정의 차원에서 논고를 펼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 기본적인 태도에 공감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하면서 논평을 가하고자 한다.
   첫째로 "서양음악이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와 학교를 통해서 그리고 군악대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유입되었으며 초기의 서양음악 지도자들로서 김인식, 이상준, 김형준, 김영환, 홍난파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 다섯 명에 백우용, 정사인을 반드시 추가해야 한다. 왜냐하면 백우용은 엑케르트의 수제자로서 지휘 및 작곡에 뛰어났으며 정사인은 플루트 연주는 물론 행진곡 「추풍」을 비롯하여 수 편의 관악곡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학부 창가집이 내용에 있어서 이미 일본에서 발행된 소학 창가집에 실렸던 곡들의 번안이 거의 전부이며, 학부 창가집에 이름만 신편 창가집으로 바뀌어 조선총독부에서 발행되었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사실과 매우 다르다. 왜냐하면 소학 창가집 초편(33곡)과 학부 창가집 제 1집(27곡)은 같은 곡이 4곡뿐이며 학부 창가집 제 1집과 신편 창가집(41곡)은 같은 곡이 3곡뿐이며 이 중에서 일본 풍으로 작곡된 곡은 일본 국가를 포함해서 3곡뿐이고 그 밖의 것은 모두가 서양풍 또는 5음음계로 된 범 동양 풍의 곡일 뿐만 아니라 학부 창가집이 모두 우리말가사로 되어 있는데 비해 신편 창가집은 35곡이 일본말 가사이고 6곡만이 우리말 가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일본 음악을 통해 우리를 세뇌시키려 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셋째로 "일제하 음악교육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 우리나라 전통음악 교육의 붕괴이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보통학교 령에도 전통음악 교육에 관한 과목이 없었고 또한 학부 창가집에서조차 전통음악의 음조로 된 악곡이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만 말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서양음악이 신기하고 새롭고 좋게만 느껴졌고 한편 관존민비 사상에 의해 양반 계급은 아악, 정악만을 숭상했고 평민은 민속악만을 즐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전통음악을 경시 내지 멸시하는 경향이 짙었던 - 배외사상 또는 사대사상에 근본원인이 있다는 것을 묵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로 "일제하의 음악교육은 한국의 의식과 전통적인 사고의 개발을 가로막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통음악교육의 단절에서 크게 찾아볼 수 있고 또한 서양음악의 전문교육 기관 하나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때 이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일제하에 조양구락부 - 조선 정악 전습소, 이왕직 아악부가 존속했었고 한편 이화여전 음악과는 물론이고 음악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중앙보육, 이화여전 보육과, 경성보육이 있었으며 이 밖에도 경성 고등음악학원, 경성 음악전문학원 등이 있었던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희전문과 숭실전문의 음악부가 정기연주회, 지방순회공연, 음악강습회 등을 통해 음악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이 모두가 일제의 강압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 학교에서는 서양음악 내지 서양풍으로 작곡된 일본창가를 가르쳤고, 교회에서는 찬송가를 통해 서양음악만을 가르쳤고 단지 가정과 사회에서만 국악(정악 및 민속악)을 즐기게 되었으니 말하자면 우리의 전통음악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었다는 수치스러운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다섯째로 "1910년대 말기에 김영환, 윤심덕, 홍난파 등이 최초로 일본에 유학함으로써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고 말했는데 그 때의 유학생으로는 이 3인 이외에도 한기주가 있었음을 상기하며 그들이 일본식 교육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속단이다. 실은 독일식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 도리어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이들이 일본 전통음악을 배운 것은 물론 아니며 그 때만 해도 일본식 교육방법을 그들이 몰랐기 때문에 주로 독일에서 초빙한 외국인 교수들에게 직접 배우거나 일본말로 번역된 외국교재로 교육을 받은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여섯째로 "서양음악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일본을 통한 간접적인 방법 혹은 여과된 방법을 택함으로써 또 하나의 문제점을 낳게 한 면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것 또한 속단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일본 사람이 저술한 책으로 공부한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들이 번역 또는 편집한 외국인 저자의 책(도, 불, 영, 미, 이)으로 공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곱째로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는 음악의 전문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교육을 통해서 일본적 정서에 의해 지배당했다고 하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매스콤을 통한 일제하의 교육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일제하 한국어 방송 철폐)"라고 말했는데 제 2방송을 통해 국악은 물론 서양음악(관현악곡, 실내악곡, 독주곡, 합창곡, 독창곡, 창가, 동요 등)이 방송되었기 때문에 별로 큰 문제가 될 수 없으며 이보다는 유성기의 보급에 따라 일본 고유 음계인 미야꼬부시로 된 일본사람 작곡의 유행가는 물론이고 역시 미야꼬부시로 작곡된 우리나라사람 작곡의 유행가가 가정과 거리에서 범람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일제하의 우리나라 유성기판은 판소리, 단가, 시조, 잡가, 민요, 가야금 산조 등 국악 이외에 특히 가장 많이 팔렸던 O.K레코드의 경우 앞 뒷면에 유행가와 신 민요가 들어 있는 것이 많이 나왔는데 이에 있어서 유행가는 미야꼬부시로 된 - 우리나라 사람의 작곡의 - 곡이 절대 다수였고 한편 신 민요는 우리 민요조로 된 것이기 때문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러므로 신 민요에 유행가를 끼워 팔므로써 자연히 일본 정서가 우리나라 사람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게 된 것이다. 또한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은 미야꼬부시로 된 음악은 일본 정서가 너무도 강하게 풍길 뿐만 아니라 그 음계 자체가 염세적이요, 망국적인 정서를 고취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독소에 감염된 - 일본 유행가를 모방한 곡이 급격하게 유행되면 될수록 우리의 민족혼은 마비되어 절망, 허탈상태에 빠져 들어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사회교육에 있어서 결정적인 악역을 담당한 것은 방송이 아니라 유성기판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한편 이런 음악이 악극단, 가극단을 통해 전국적으로 확산, 보급된 것이다.
   여덟째로 "당면 문제에 있어서 우선 음악교육의 전문 음악교육 체제와 일반 음악교육 체제가 제대로 수립되어 있지 않은 것 - 즉 음악대학과 음악학교(음악원, 아카데미)등의 기구를 전문화시키거나 독점시키는 것이 첫째 문제이다"라고 말했는데 일제 시대에 일본의 관립 동경음악학교에는 본래 본과와 갑종 사범과(중학교 음악교사 양성)와 을종 사범과(소학교 음악 정교사 양성)가 있었으나 뒤에 본과와 갑종 사범과만이 남게 되었으며 이 밖의 사립 음악학교는 대개가 사범과가 없는 - 음악원, 아카데미 체제로 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일제하의 이화여전때부터 해방이후의 이화여대, 서울대, 숙명여대, 연세대, 경희대. 한양대 등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의미의 - 음악대학도 아니고 음악학교도 아닌 변칙적 체제로 정착해 버렸으며 그 후에 생긴 사범대학 음악교육과도 명칭과는 달리 소위 음악대학의 축소판으로서 음악대학 지향의 것이 되어 버렸으니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음악교육과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와 같은 모순이 하루속히 시정되어야만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다.
   아홉째로 "당면문제에 있어서 전통 음악교육과 서양음악교육의 균형 있는 조화의 문제가 오랫동안의 숙원이었던 것 같은데  보다 저 적극적인 방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며 종족음악 교육방법론의 다양한 도입도 추진되어야 하겠다"라고 말했는데 오늘날 우리나라는 전통음악교육과 서양음악교육에 있어서 '서양음악 일변도의 교육이라고 해도 절대 망언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어학교육의 경우 한글→한문→영어→제2외국어(독, 불), 역사교육의 경우 국사→동양사→서양사의 순으로, 음악교육에 있어서도 국악→동양음악(동남아음악)→서양음악의 순으로 유치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이 방법대로 한다면 전통음악교육과 서양음악교육의 균형있는 조화의 문제는 자연 해결될 것이다. 내 나라의 음악을 모르면서 무시, 천시하고 서양음악만을 배우게 하는 것은 국적 있는 교육이 아니라 그야말로 <국적 없는 교육>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끝으로 이상의 논평에 이어 몇 가지 제언을 함으로써 결론을 짓고자 한다.
 1. 국악→동양음악→서양음악의 순으로 학교교육을 개혁해야 한다.
 2. 국악을 아는 양악인과 양악을 아는 국악인을 양성하도록 해야 한다.
 3. 연주를 할 줄 아는 작곡가와 작곡을 할 줄 아는 연주가를 양성하도록 해야 한다.
 4. 음악대학(음악과)에서는 교직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도록 하고 음악교육과에서만 교사를 양성하도록 하거나 혹은 음악교육과를 폐지하고 음악대학(음악과)만을 존속시키되 전공 실기보다 학과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만 교직과목을 이수할 수 있는 혜택을 줌으로써 참된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5. 여자만을 교육하는 음악대학(음악과 음악교육과)이 존재하는 한 남녀공학의 음악대학(음악과, 음악교육과)에서는 과, 전공의 특색을 살리되 남녀 비율을 2:1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주최 「한국정신문화연구의 현황과 진로」 1982.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