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외도(外道)와 준도(遵道)

나  운  영

   26세의 청년 작가 차이코프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의 초청을 받아 음악원 교수에 취임한 이래 11년간을 후배 양성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였다. 그러나 의외에도 전연 면식조차 없던 부유한 미망인 메크의 절대한 후의로 연봉 6,000루불의 연금을 조건 없이 받게 되어 드디어 교단생활을 청산하고 숙원이었던 행복스러운 창작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부터 13년간 그는 자유로이 스위스, 이탈리아 등지를 전전하면서 마음껏 작곡을 하여 많은 걸작을 완성시켰다. 이로써 그의 외도(?)를 청산하고 비로소 존도를 하게 된 셈이다.
   나는 차이코프스키가 한없이 부럽다. 나 자신 음악교육에 종사하는 몸으로서 이렇게 외도란 말을 대담하게 사용하는 것이 모순된 일이며 한편 제3자로 하여금 교육자를 무시하는 말같이 들리게 될지도 모르나 그것은 나 자신이 절대로 음악교육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하기야 작곡가가 교육에 종사한다는 것이 그리 모순된 일 같이 생각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나 작곡가로서는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며 이는 분명히 2중생활을 하는 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차이코프스키나 메크 부인을 내세우고 또한 외도(外道, 본업을 떠나 다른 일에 손을 댐), 준도(遵道, 도를 좇음)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아카데믹한 수법만을 강의하는 것이 교육이라면 아카데믹한 수법에서 되도록 벗어나는 것이 작곡이다."라고 나는 또 다시 대담하게 말하고 싶다. 더구나 현대음악을 작곡하려면 과거의 전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므로 이러한 작가가 교육을 겸한다는 것은 하나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악상이 떠오른 즉시 캐치하여 작곡하려 해도 강의 시간 때문에 걷어치우고 말아야 하므로 마치 영화 「미완성 교향악」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산수시간과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슈베르트의 경우에 비하면 그래도 음악교수인 우리네의 처지가 훨씬 행복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나 같은 분야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스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이제 내가 말하려는 목적은 결코 내 자신의 신세 타령을 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우선 밝혀둔다.
   홍난파 선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작곡을 하신 윤극영 선생의 경우를 잠깐 생각해 보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동기라고 말할 수 있다. 윤극영 선생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나 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의 민요 작곡가 포스터와 같이 이미 선생의 곡은 우리의 민요가 되고 만 감이 있다. 혹자는 선생의 곡은 애상적이라고 말하나 이는 8·15이후의 신작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8·15전의 선생의 작품보다 해방 후의 작품을 더 높이 평가한다. 「쌍둥 별」,「길 조심」,「꽈리」,「자장가」,「봄이 와요」 등은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선생의 수법은 악식상으로 볼 때 파격이면서도 극히 자연스럽고 한국적인 정서가 넘쳐 흐른다. 혹자는 또한 선생을 단순히 선율 작곡가(?)로만 인정하려 드나 아무리 반주를 잘 붙인들 선율이 아름답지 못해서는 그 진가가 반감된다. 선생은 슈베르트와 같은 - 선율의 천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줄로 안다. 이러한 선생이 작곡에 전념하지 못하고 외도를 하고 계신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나 일개인 뿐은 아니리라.
   이밖에 또한 머리에 떠오르는 분은 「꽃」,「아저씨 모자」,「애기 각씨」 등을 작곡하신 유기흥 선생과 「우리아기 행진곡」,「갈잎 피리」,「애기별」 등의 작곡자이신 정순철 선생이다. 누가 뭐라고 한들 나는 두 분을 홍난파, 윤극영, 박태준 선생과 함께 한국 작곡계의 선구자라고 확언한다.
   작곡가가 창작에만 몰두한다고 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많이 생산하기가 힘든 일인데 소위 창가선생이나 별로 다름없는 외도를 하게 된다는 것은 그 책임이 우리네 작곡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 이 국가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럴 때마다 다시 생각나는 것은 차이코프스키와 메크 부인의 경우이다.
   아! 언제나 작곡가가 음악교육가 또는 기타의 직업을 가지고 외도하지 않고 준도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인가?

 <국제신보 1954.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