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작곡하는 신인에게

나  운  영

   신인(新人)이란 대단히 귀한 말입니다.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사람을 가리켜 부르는 말이겠지요. 물론 나는 지금도 신인으로 자처하고 있으나 편집자로부터 이러한 제목의 글을 부탁받고 보니 여러 가지로 반성되는 점이 적지 않습니다. 다만 나의 선배의 전철을 밟아 이 모양밖에는 되지 못한 나로서 신인에게 또한 나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간단히 논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고정음명창법을 완전히 정복하기 바랍니다. 흔히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멜로디는 거의 대부분이 조성음악이요 혹간 가다가 무의식적이나마 무조적 음악이 머리에 떠오른다 치더라도 이것을 제대로 악보에 옮겨 놓지 못하는 까닭이 이동계명창법 때문인 것을 생각할 때 하루바삐 고정음명창법을 정복해야 한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앞서 강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고정음명창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같이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먼저 잘 아는 곡 또는 이동계명창법으로 정확하게 부를 수 있는 곡을 택할 것이고 G,D,A,E,B조 혹은 F,B♭,E♭,A♭조 등 차차로 #이나 ♭이 많이 붙은 곡으로 향하거나, 또는 예를 들어 E장조의 곡에 있어서 먼저 D#을 떼고 A장조처럼 읽어 보고, 다음에는 G#까지 떼고 D장조처럼 읽어보고, 또 그 다음에는 C#까지 떼고 G장조처럼 읽어 보고, 마지막에는 F#까지 떼고 C장조처럼 읽어 보는 연습을 거듭하게 되면 자연히 고정음명창법이 익숙해 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에 한 가지 주의할 것은 토닉솔파(Tonic-solfa) 식으로 #이나 ♭ 등 사이음(파생음)까지 따로 발음하여 C#=di, F#= fi, E♭= me, A♭= le 등과 같이 부르면 음정을 정확하게 내는 데 더욱 큰 효과가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고정음명창법을 철저히 연습하지 않으면 현대적인 작품을 쓸 수 없을 것이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을 신인 여러분에게 말해 두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피아노의 테크닉을 마스터하기 바랍니다. 피아노는 작곡에 있어서 가장 편리한 실험기구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일일이 오선지에 적지 않고 즉석에서 피아노로 실험해 볼 수도 있고 또한 피아노로 즉흥 연주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니 피아노의 테크닉을 습득해 놓지 못하면 작곡하는 데 있어서 상상키 어려울 만큼 큰 지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아노의 테크닉 습득 과정에 있어서는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사람과 꼭 같은 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보다는 무엇보다도 작곡에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짧은 시간에 고도의 테크닉을 마스터할 수 있게 공부하는 것이 절대로 유리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나의 실제적인 교수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최소한도로 먼저 「바이엘」을 끝마친 다음에 「하농」과 「부르크뮐러의 25번」과 찬송가를 연습하고 다음에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과 바하의 「인벤션」을 연습하고 다음에 쇼팽의 「녹턴」과 「발라드」와 브람스의 「랩소디」를 연습하고 끝으로 드뷔시. 라벨, 바르토크 등등 현대 작품을 연습하게 하면 피아노뿐만 아니라 작곡 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특히 작곡을 공부할 때에는 악곡 분석을 수 없이 많이 해야 하는데 이것도 자기 자신이 직접 피아노로 쳐서 들으면서 해야만 효과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도대체 피아노가 들지 않은 곡은 별로 많지도 않은 형편이니 도대체 피아노를 잘못치고 위대한 작곡을 한다거나 피아노를 못치니까 작곡을 하려 든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운 것이므로 신인 여러분에게 특별히 이 말을 해 두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기본적인 작곡학 과정을 반드시 이수하기 바랍니다. 기능적 화성학, 자유대위법, 악식론, 관현악법, 근대화성론, 작곡법 등을 단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허기야 Tonic, Dominant, Sub-dominant -3화음만 가지고도 작곡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예술적인 작품을 쓰려면 이상과 같은 과정을 이론과 실습을 겸해서 공부해 나가야만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개성적인 동시에 다소라도 새로운 작품을 쓰려면 먼저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풍부한 작곡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화성학, 대위법, 악식론, 관현악법, 근대화성론, 작곡법 등의 이론을 토대로 삼고 실제로 여러 악성들의 작품을 분석 연구해야만 20세기 후반기의 한국 작곡가라는 것이 증명될 수 있는 - 시대성과 민족성을 등지지 않은 - 한국적이며 동시에 현대적인 작품을 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0대의 한국 청년이 18세기의 독일 사람의 작품과 비슷한 것을 내놓는다는 것은 매우 해괴한 일이 아닙니까? 시대성과 민족성을 떠난 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작품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음악이전, 기술이전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음악 가운데는 신고전주의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신고전주의와 고전주의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 현대적 기법과 고전적 정신이 결합된 것이 신고전주의이므로 'Back to Bach'라고 해서 그대로 Bach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서는 너무나 큰 착오입니다. 너무 조급히 서둘지 말고  고전, 낭만, 근대, 현대 양식 등에 따르는 기본적인 작곡학 과정을 성실하게 밟아 나가 현대적 작품을 쓰게 되기를 신인 여러분에게 특별히 부탁하는 것입니다.

   넷째로는 한국 음악을 포함하여 동양 음악을 연구하기 바랍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는 한국 음악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음악학교에서는 주로 서양 음악만을 가르치고 있을 뿐 한국 음악은 물론이고 동양 음악도 별로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미 각국의 음악학교의 출장소(?)의 역할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젠가 배외(排外)사상과 배외(拜外)사상과, 방언(方言)과 방언(邦言)이란 것을 논할 일이 있습니다만 헝가리의 바르토크나 코다이 처럼 우리 민요를 채보,연구하여 먼저 민족적인 요소를 발굴해야 할 것이고 다음에는 이것을 토대로 하여 한국적인 작곡학의 체계를 세워 예술성, 세계성을 띤 한국 민족음악을 창조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일조 일석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것이며 또한 그 스타일이나 기법을 통일시켜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한국 음악을 개별적으로 연구하기보다는 이에 앞서서 광범위하게 동양 음악 전체를 비교, 연구하는 것이 좋은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날 20대의 학생들 가운데 국악열이 날로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것은 매우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음악을 포함하여 동양 음악을 연구함으로써 나아가 한국적 작곡기법을 확립시키는 일이야 말로 신인 여러분에게 맡겨진 과업이라는 것을 말해 두는 바입니다.

   물론 이밖에도 신인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은 많으나 무엇보다도 시급히 요구되는 것 중에서 우선 네 가지만을 소개하는 바입니다.

 <월간 음악 1958.8,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