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빛나는 역사와 전통
 - 연세 음악 55년에 즈음하여 -

나  운  영

   사람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 '역사'와 '전통'을 한 데 묶어서 말하자면 '전통'은 '역사'에 따라다니는 것처럼 단순히 생각하기가 쉽다.
   역사는 오래 됐는데 이렇다 할 전통이 없는 경우, 역사는 짧은데 뚜렷한 전통이 있는 경우, 역사도 짧고 전통도 없는 경우, 역사도 길고 전통도 있는 경우 - 에 네 가지 중 우리 연세 음악만이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할 수 있으리라.

   1918년 우리나라 최초의 음악전문가이신 피아니스트 김영환(1892~1978)선생께서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신 이래 시작된 음악활동이 오늘날까지 55년 계속되어 오는 동안 미처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치 많은 음악인이 배출됐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온 연세 음악인은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 마땅하다.
   연세음악 44년을 나는 아래와 같이 3기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저 한다.
     제 1기 (1918~1955) --- 요람기
     제 2기 (1955~1964) --- 태동기
     제 3기 (1964~       ) --- 개화기
   즉 연전 음악부, 연희대 음악부 시절이 제 1기요, 신과대학 종교음악과 시절이 제 2기요, 음악대학 창설 이후가 제 3기가 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제 1기라는 나의 견해에 반대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줄로 생각된다. 무에서 시작해 관현악단과 합창단과 악대, 4중창단이 조직되어 정기 음악회를 비롯하여 정기 지방 연주여행, 야외 음악 연주회, 중등 음악 콩쿨, 하기 음악 강습회, 전문학교 졸업생 송별 음악회등등 눈부신 활동이 모두 제 1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연세음악의 주역을 살펴 보기로 하자.
     1. 김영환 (1918~1928. 10년간 제직)
     2. 현제명 (1929~1943. 14년간 제직)
     3. 문학준 (1946~1948.   2년간 제직)
     4. 박태준 (1948~1960. 18년간 제직)
     5. 이인범 (1960~1973. 13년간 제직)
     6. 나운영 (1955~1976. 21년간 제직)

   즉 음악부 아닌 음악과 창설의 꿈이 깨지자 김영환 선생이 1928년에 사임하셨고, 일제 탄압 하에 일체 음악활동을 할 수 없게 되자 현제명 박사가 1943년에 사임하셨고, 8·15 전후의 혼란기를 겪은 뒤 문학준 선생이 1948년에 사임하셨고, 정년 퇴직으로 말미암아 박태준 박사가 음악대학장직을 1960년에 사임하셨으나 현재도 특별 강사로 강의를 맡고 계시며, 신병으로 인해 이인범 선생이 음악대학장직을 1973년 7월에 사임하셨고 9월에 별세하신 다음 그 뒤를 본인이 이어받게 되었는데 이렇게 주역이 6차례나 바뀌는 동안 연세음악은 무럭무럭 자라 마침내 국내 최고(最高, 最古)의 거목이 된 것이다. 여기에 있어서 김영환 선생, 박태준 박사, 이인범 선생의 공로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주역 중에서도 주역을 맡으신 현제명 박사의 공적을 특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제명 박사의 재임 14년 동안에 이루어진 음악 행사를 간추려 볼 때 그 느낌이 더해진다.
     1929년 연전 관현악단 조직, 제 1회 정기 지방 연주 여행 개시
     1930년 제 1회 연전 추기 음악회 개최
     1931년 제 1회 남녀 하기 음악 강습회 개최
     1932년 제 1회 전 조선 중등학교 현상 음악회 개최, 하이든 탄생 200주년 기념 음악회 개최
     1935년 제 1회 야외 음악회 개최, 제 1회 시내 전문학교 졸업생 송별 음악회 개최
     1936년 주피터 교향곡 초연, 정기 지방 연주 여행 최종 공연 개최
     1939년 악대 창설
     1940년 창립 25주년 기념 야외 음악 연주회 개최, 제 18회 추기 음악회 최종 공연  개최
   즉 10년 동안에 추기 음악회를 18회까지 개최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현제명 박사가 이끌던 눈부신 음악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교향악 운동, 음악 강습회, 음악 콩쿨 등등의 확고한 기반이 닦아졌으니 이것만으로도 연세 음악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 연세인은 또 하나 떳떳하게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기라성과 같이 빛나는 수 많은 지도자가 연전 음악부(세브란스 의전 음악부를 포함함)에서 배출된 사실만으로도 넉넉히 증명되리라. 이제 그 명단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박태원, 이묘묵, 박술음, 노진박, 김신명, 김윤경, 박태화, 신봉조,안신영, 안기주
           신영묵, 최규남, 윤기성, 독고선, 이강열, 이창희, 홍순혁, 배덕영, 박유경, 최봉즉
           노재명, 김경섭, 문장도, 이은택, 정일형, 모홍기, 박병하, 차상달, 이영민, 이인선
           이광준, 송흥국, 오창희, 김대연, 홍재유, 홍은유, 이유선, 이희성, 최성두, 황재경
           곽정순, 김   관, 한태일, 김용우, 김성태, 유기흥, 이용필, 신원근, 이유성, 차형기
           임동혁, 김성도, 이인범, 문학준,선우천복,모기윤,김성섭, 정화세, 민병문, 유한철
           한린선, 김은우, 김연준, 김?수,  박창해, 김생려, 김대성, 김신걸, 최규영, 장낙희
           전상훈, 정상록, 김지완, 김종수, 이응진, 호재성, 조창대, 김진하, 정희석, 이종구
           권종근, 이창환, 이응주, 김창수, 김영귀, 이창봉, 권오기, 사상필, 문한우, 박인관
           이일래, 송수준(무순) 등등
   이에 신과대학 종교음악과가 창설된 제 2기(1955년) 이전의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 음악부에서 배출된 인물을 소개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김기령, 김규원, 김대로, 변   훈, 한태근, 김상철, 변성화, 장규상, 김재홍, 지호영
           김용근, 독고영(무순) 등등
   위에서도 밝힌 바 있거니와 연세음악 55년에 있어서 제 1기 없이 제 2기가 있을 수 없고, 특히 제 2기 없이는 제 3기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연세대 음악대학이 이미 중견음악가를 많이 배출했고 요즈음 특히 「서울 음악제」와 「동아 음악 콩쿨」 등에서 작곡과 성악 등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니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새삼 자랑한들 조금도 지나친 일이 아닐 줄 안다. 창설된지 거의 1세기가 가까워 오는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이나 근 30년을 바라보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비해 우리 연세대 음악대학은 비록 18년밖에 안되지만 이미 55년이란 뿌리가 깊게 박혀 있으니 과연 선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조금도 신기할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기에 역사와 전통은 절대로 무시할 수 없고 또 무시하려 든다고 해서 무시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말 못할 안타까움이 있으니 곧 음악대학 단독 건물이 없다는 기막힌 사실이다. 허기야 대강당을 독점(?) 사용하고 있으므로 겉으로 볼 때 동양 최대 아니 세계 최대의 음악대학 건물을 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제는 우리도 단독 건물을 마땅히 가져야 될 때가 됐다고 하기보다 이제 와서 건물 운운하는 것 자체가 만시지감의 느낌이 많다. 물론 대학이란 첫째가 교수요, 둘째가 학생이요, 셋째가 시설이요, 넷째가 건물이다. 아무리 건물이 좋아도 교수, 학생, 시설이 좋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그러나 교실이 부족하고 피아노를 들여놓을 교실 없이 정상수업을 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드디어 10월 16일인 현제명박사 13주 기일을 계기로 우리는 「연세음악 55년 기념 전시회」와 「현제명 박사 추모 음악회」와 「음악대학 현제명 박사 기념관 건립 기성회」를 가졌다. 그 때 많은 연세인과 귀빈들이 모인 가운데 우리는 앞으로 2년 후인 연세대학교 창립 90주년을 맞이해서 음악대학 단독건물(현제명 박사 기념관)의 기공식을 가질 것을 다짐했다. 앞으로 『연세음악 55년사』가 발간 되는대로 본격적인 모금운동을 전개하려 하니 열심히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리라. 음악대학 주최 「정기 연주회」가 이미 29회나 열렸고 오페라 「마적」을 우리나라에서 초연한 우리 연세음대, 제 1기, 2기, 3기를 통해 유능한 인재를 부단히 배출하고 있는 연세 언덕 위에 아담한 기념관이 우뚝 솟을 날을 기대하면서 빛나는 역사와 전통이란 말의 참 뜻을 실감나게 되새겨 본다.

 <연세음악 55년사, 1974. 3.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