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사회악에 물들지 않도록
 - 진공상태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

나  운  영

   어느덧 고등학교의 졸업 시즌이 돌아왔다. 입학시험이 내일 모레로 다가오는데 어째서 미리 졸업식을 치러 버려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벌써부터 고등학교를 갓나온 학생들이 거리와 극장을 누비기 시작하는 것을 볼 때 느껴지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졸업이란 곧 인간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졸업을 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술 마시고 담배 피워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졸업을 했다고 해서 마음대로 이성과 더불어 극장에 드나들고 악서나 독서(毒書)를 읽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모든 일에 있어서 첫째로 때와 장소를 잘 가릴 줄 알아야 하고 둘째로 절제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갑자기 8·15 해방을 맞았을 때의 혼란 못지 않게 오늘의 학생들에게도 이같은 정신적 혼란이 와서는 안 되겠다. 아직도 여러분은 성인이 아니다. 따라서 갑자기 성인이나 된 듯이 날뛰려 드는 것은 무서운 착각이다. 입학 전쟁을 목전에 둔 사람이나 직장으로 진출하게 되는 사람이나 이제부터 새출발을 해야 하는 것이니 이때야 말로 마음을 가다듬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가 아닌가.
   나는 학교 문을 나선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도 사회악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충고를 하고 싶다. 일시적인 해방감과 이에 뒤따르는 허탈감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의 진공 상태를 선으로 채워야 한다. 절대로 악으로 채워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학교 아닌 영수학원에서 줄곧 졸업만을 위해 시달리고 지쳤던 심신의 피로를 서서히 풀기 위해 예를 들어 양서를 읽기 시작한다든가, 음악, 미술 등 취미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바로 깨닫고 원대한 설계 아래 새해의 힘찬 첫 발을 내디뎌라. 졸업은 끝이 아니라 곧 시작이니까….

 <주간 「선데이 서울」 1976.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