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재 출 발

나  운  영

   일년지계 재어춘(一年之計  在於春)이란 말이 있듯이 새해가 되면 누구나 제 나름대로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건만 어느덧 구세군의 자선남비 종소리가 들려 올 때 '또 한해를 그대로 보내는구나'하는 아쉬움과 초조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계획을 세운다는 것 그 자체는 대단히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때로는 거의 가능성 없는 엄청난 꿈을 꿀 때가 있다. 즉 자기 분수에 맞지도 않는 계획을 세웠다가는 반드시 실패하고야 말게 되니 우리는 자기의 건강, 환경 그리고 과거의 실적을 참작해서 가능성 있는 설계를 해야 할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해가 바뀔 때 마다 나도 수많은 계획을 빈틈없이 세워 가지고 강행해 보려고 안간힘을 써 봤지만 교직에 매어 있던 몸인지라 며칠 못가서 차질이 생겨 결국 도중하차해 버리고 말았던 쓰라린 경험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이제는 그런 욕심 사나운 새 계획 보다는 차라리 작년에 못다 했던 일부터 부지런히 해결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지금까지 하던 일을 걷어 치우거나 방향을 바꾸려 드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문득 새출발과 재출발이란 말이 떠오른다. 새출발은 1백 80도 방향을 바꾸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의미하고, 재출발은 가던 길을 소신껏 계속 달리는 것을 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20, 30대라면 새출발도 해볼만 하겠지만 40, 50대에 와서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신중히 재검토해 보아야만 할 문제가 아닐까….  더욱이 지난 해의 숙제도 미처 풀지 못한 주제에 또 무슨 새 계획이니 새출발을 하겠다고 뻔뻔스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나는 새출발 아닌 재출발을 해야겠다고 새해 새 아침에 다시 한번 다짐한다. 이미 30여년 동안 민족음악 창조를 위한 나의 신조 즉 <선토착화 후현대화>의 벅찬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이 괴롭고도 외로운 길을 줄기차게 달려 가야겠다.
   '이 한해만 더 참으소서'(누가복음 13장)라는 이 간절한 기도를 연중행사처럼 되풀이하지 않는 인생이 되어야겠다.

 <동아일보 1977.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