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새 출 발

나  운  영

   공자님 말씀에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란 말이 있다. '아침에 진리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는다 해도 한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도를 깨닫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새해, 새 아침에 나는 재출발이란 글을 통해서 '새출발은 1백 80도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니 20, 30대라면 새출발을 해볼 만하겠지만 40, 50대에 와서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신중히 재검토해 보아야만 할 문제가 아닐까…'라고 했다.
   그러나 '철들자 망령 난다.'는 격으로 만약에 늦게라도 진리를 깨달았으면 그 때부터라도 새 출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화가가 몇 달을 두고 그린 그림을 하루 아침에 다 지워 버리고 다시 그리는 일이나, 작곡가가 거의 완성 단계에 놓인 곡을 불살라 버리는 예를 우리는 종종 보고 듣게 되는데 나는 그 과단성보다도 예술가로서의 양심을 더 높이 사고 싶다.
   범인들에게는 가령 그런 양심이 있다 해도 용기가 없기 때문에 - 그릇된 것을 뻔히 잘 알면서도 - 그런 대로 밀고 나가 버리거나, 어떻게 해서든 합리화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닐까?

   벌써 새해의 1월도 저물어간다.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글을 다시 음미해 보면서 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보련다. 이는 절대로 회고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성한다는 뜻에서이다. 흔히 명사들의 회고록을 읽어 보면 자기의 성공담이나 장점만을 자랑삼아 늘어 놓는 것을 보기 쉬운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회고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 나는 나의 과거를 그저 회고하며 자위하려 들지 않고 반성하고 회개함으로써 - 지금부터라도 결코 늦지 않았으니 - 재출발 아닌 <새출발>을 하여 거듭나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해보는 것이다. 예술가의 생애는 본래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동아일보 19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