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우리말 노래를 갖자


나  운  영


   서양 찬송가가 기독교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지도 100년을 바라보고 있고, 한편 우리나라 학교에 있어서의 음악교육이 서양음악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짐작하거나 우리나라의 고전음악은 중국이나 일본 음악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착각하거나 - 심지어는 민족 음악 운동은 시대에 뒤떨어진 잠꼬대인양 멸시해 버리려 드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만 가는 이 때에 " 우리말 노래를 갖자"라는 제목이 나에게 주어지게 된 것을 무엇보다도 기쁘게 생각한다.

   첫째로 교회 생활을 생각해 보면 개편 찬송가에만 들어 있는 27편의 우리 찬송을 제외하고는 593편이 모두 서양 찬송이기 때문에 결혼식 때에는 「오늘 모여 찬송함은/ 형제 자매 즐거움/ 거룩하신 주 뜻대로 혼인예식 행하세」를 , 장례 때에는 「날빛보다 더 밝은 천당/ 믿는 맘 가지고 보겠네/ 믿는 자 위하여 있을 곳/ 우리 주 예비해 두셨네」를 부르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다.
  둘째로 학교, 사회 생활을 생각해 보면 헤어질 때에는 반드시 「서편에 달이 호수가에 질 때에/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를 부르는 것이 또한 상식으로 되어 있다.
  셋째로 가정생활을 생각해 보면 생일날에는 「해피 버스데이 투 유」(생일 축하 합니다)를 부르는 것이 물론 상식으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교회생활이나 학교, 사회 ,가정 생활에 있어서 모두 서양 사람이 작가 , 작곡한 노래를 번역해서 부르는가 하면 특히  틴에이저들 중에는 아예 원어 가사로 부르는 것이 유행되고 있는데 우선 원어 가사의 발음이 정확하건 말건 도대체 뜻을 제대로 알고 부르기나 하는지 조차가 의심스럽기도 하려니와 이런 생활노래야 말로 우리의 기후, 풍토, 생활 습관에 맞도록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 작곡한 것을 불렀으면 얼마다 좋을까 하고 탄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도 배외사상에 젖어 있어서 의복은 물론 심지어 가구에 이르기까지도 외제를 사용하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는 판이니 외제 노래를 부르는 것쯤이야 상식으로 여기기는커녕 도리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어 버렸으니 아예 우리네들의 의식구조부터 뜯어 고쳐야겠고 좀 심하게 말하자면 민족성 개조론을 주장해야 할 판에 이르렀다. 「산타 루치아」는 곧잘 부르면서도 우리 민요를 많이 모르는 사람, 「보리수」는 즐겨 부르면서도 우리 가곡은 고작해서 <봄 처녀」, 「그 집 앞」,「선구자」 등 몇 곡밖에는 모르는 사람, 「클레멘타인」은 알아도 우리 동요는 「고향의 봄」,「반달」,「오빠 생각」 정도밖에 모르는 사람, 「메기의 추억」,「내 고향으로 날 보내 주」,「먼 산타루치아」,「언덕 위의 집」,「들장미」,「 바나나 보우트 송」,「줌갈리 갈리길리」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들을 외국 노래에 젖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나는 새로운 곡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곡은 「생일 축하 노래」이다, 위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가정에서 의례 습관적으로 부르고 있는 곡은 외국 곡이다. 물론 요즈음에는 「해피 버스데이 두 유」 대신에 「생일축하합니다」로 번역해서 부르기도 하나 서양음악이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100년을 바라보는 이 때에 아직까지도 「생일 축하 노래」를 외국 곡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주체성을 찾는 의미에서도 그대로 묵과해 버릴 수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작곡해 본 것이다. 나는 이 곡을 4분의 3박자로 작곡했고 5음음계로 멜로디를 작곡했으며 세마치 장단에 맞추어 부르면 더욱 맛과 멋이 나도록 작곡해 보았다. 이 곡은 다만 하나의 본보기에 지나지 않으니 여러 사람들이 솔선해서  레크레이션 노래나 캠핑 송 등 소위 생활노래를 작사, 작곡, 보급시키는 운동을 벌여 주었으면 한다. 나는 위에서 배외(拜外)사상을 통박했다. 그러나 이것은 추호라도 배외(排外)사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외국 노래를 부르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만약에 외국의 생활노래를 부른다면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르는 일이 바람직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왕이면 우리 가사와 우리 곡조로 된 노래를 우리들끼리만 부를 것이 아니라 외국에도 소개함으로써 "노래를 통한 국제 교류를 꾀하자"는 것뿐이다. 이제 와서 우리말 노래를 짓자고 외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우리나라는 결코 외국 노래의 식민지가 될 수는 없다.

 <월간 세대 19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