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두 가지 조건
- 대판 텔레만 앙상블을 듣고 -

나  운  영

(1)
 「테크닉이 끝난 데서부터 예술은 시작된다.」-Leopold Auer(1845~1930)



   이번 여행 중 우연히 '텔레만 앙상블 연주회'에 초대받아 그 연주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연주를 들으면서 문득 아우어 교수의 역사적 명언을 되새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텔레만 앙상블을 처음으로 들은 것은 1974년 경도에서 열린 제2회 아주 작곡가회의의 연주회 때였다고 생각된다. 그 후 오늘까지 대판을 중심으로 바로크 음악을 계속 소개해 온 그 노력과 공적에 대해 먼저 지휘자인 延原武春(姜武春)님에게 마음으로부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텔레만 앙상블의 테크닉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어 있다고 말해도 좋을 줄로 생각되나 조금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첼로 주자의 왼손의 포지션이 같지 않은 점 같은 것이다. 즉 현악기에 있어서 포지션이 같지 않으면 음색과 음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또 오보에에 있어서도 바로크 시대의 트럼펫의 음색에 가까운 - 좀 더 충실한, 둥근 소리가 바람직했고 더욱이 큰 난점은 폭이 너무 큰 비브라토여서 좀 귀에 거슬리게 들렸다. 솔직하게 말해서 텔레만 앙상블이 보다 좋은 연주를 하려면 연원(延原)님이 오보에를 불면서 지휘하는 - 이를테면 밴드 마스터(?)를 겸하지 않는 것이 첫째 조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오보에를 불면서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의 휭거링이나 보우잉, 비브라토에 이르기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잔소리를 하는 까닭은 실은 나도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 챔버 심포니>를 조직해서 <대한 합창단>과 함께 안톤 베베른의 교향곡, 그리이크의 홀베르그 조곡, 바하의 농민교성곡 등을 한국에서 지휘, 초연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여러 멤버들과 함께 연주 활동하는데 얼마나 많은 고충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더욱이 테레만 앙상블처럼 비발디나 텔레만, 바하 등 바로크 음악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계속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힘이 들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도 이와 같이 지휘자와 멤버가 일체가 되어 음악을 즐기면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감회가 깊었다.


 

(2)
「지구가 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바로크→고전→낭만→근대→현대→바로크→처럼 반복되면서 발전되어 나간다.」

  

 지금부터 5년 전 이같은 생각이 돌연 내 머리에 떠올랐다. 즉 현대와 바로크는 양극인 동시에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와 현대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니어서 바로크가 이해되지 않으면 현대도 이해할 수 없고, 반대로 현대가 이해되지 않으면 바로크도 이해할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쉔베르크의 12음기법에 있어서의 대위법적 기교가 팔레스트리나 양식의 순수대위법에 있어서의 원형, 전위형, 역행형, 전역형의 현대적 적용에서 유래된 점만으로도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텔레만 앙상블도 앞으로 비발디나 텔레만 등의 바로크 음악뿐만 아니라 스트라빈스키나 베베른 등의 현대 음악도 많이 연주했으면 좋겠다. 네빌 마리너와 아카데미 합주단이 소편성의 곡이라면 근대, 현대 그밖에 어떤 곡이든지 연주할 수 있는 것처럼 텔레만 앙상블도 레퍼토리의 폭을 넓혀야 하는 것이 제 2의 조건이라고 생각된다.
   음악의 고향은 뭐니뭐니 해도 바로크이다. 둥근 지구가 끊임없이 빙빙 돌고 있는 것과 같이 바로크→고전→낭만→현대→바로크→처럼 순회하듯, 조용한 호수면에 떨어진 돌맹이의 파문이 점점 퍼져 가듯 텔레만 앙상블도 점점 레퍼토리의 폭을 넓혀 가면서 앞으로는 음악 표현(악곡 해석)의 방향, 발전에 주력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의 텔레만 앙상블 연주에 대한 인상기를 마치련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격월간 '제2주제' 1979. 신년호에서 번역,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