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겸양은 과연 미덕인가?

나  운  영

   C교수가 E대학교에 재직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학장이 부른다기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더니 - 그동안 줄곧 개인 실기 지도만 맡아 왔던 - 그에게 클래스 강의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그 때 그는 넉넉히 가르칠 자신은 있었으나 이를 사양했다. 그러나 학장은 그를 설득하면서 수락할 것을 다시 권유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C교수는 더욱 사양했다…. 설득에 실패한 학장은 내심으로 C교수의 실력을 의심치 않을 수 없게 되어 결국 C교수는 대학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상은 지나친 겸양지덕이 가져다 준 어처구니 없는 결과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본심으로는 좋아하면서 겉으로는 사양한 C교수의 도가 너무나 지나친 데서 빚어진 불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의 의식 구조에는 확실히 겸양지덕이 뿌리 깊게 박혀 있지나 않을까….

   겸양은 소극적인 태도이며 남에게 승리의 기회를 거저 주는 것으로 끝나기가 쉽다.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것이 통할리가 있겠는가? 흔히 외국 사람들은 자기를 자랑한다. 자식 자랑으로 시작하여 조상자랑, 역사자랑, 문화예술을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를 보고 우리네들은 그들을 흉본다. 어떻게 저렇게도 저들은 자신들을 내세울 수가 있을까? 겸양지덕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인종이라고 속으로 비웃어 버린다.
   그러나 나는 해외에서 일하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겸양지덕을 버려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우리네의 의식구조와 외국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를 자랑하는데 앞장설지언정 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우리의 문화 선전원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말]과 [한글]을 비롯하여 우리의 음악, 미술, 무용, 건축등등을 외국인에게 올바르게 소개하는 데 여러분은 앞장서야 한다. 특히 동양 3국에 있어서 중국의 문화가 우리나라를 거쳐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우리의 것은 중국것과도 다르고, 일본 것과도 다르다는 점을 내세워서 우리의 고유 문화를 외국인들이 인식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뜻한 바 있어 73년에 한국민속음악박물관을 차려 놓고 우리나라의 악기, 악보, 악서, 레코드, 녹음 테이프등등을 수집하는 한편 동남아 일대의 것을 모조리 모으는 중에 있는데 이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외국 사람들은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일부러 찾아오는 것을 볼 때 역시 외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짐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해외에서 일하는 여러분들에게 음악인으로서 두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음악 - 대중가요를 제외한 우리나라의 아악, 정악, 판소리, 민요, 가야금산조, 농악등등의 레코드나 녹음 테이프 등을 가지고 나가 소개한다든가 또는 우리나라의 고유 악기인 향피리, 대금, 가야금, 거문고등등을 그들에게 소개해 주었으면 좋겠고, 둘째로는 그 대신 교환 조건으로라도 그들에게서 자기 나라의 레코드 또는 녹음 테이프를 비롯하여 민속 악기, 민속 악보등등을 수집해서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한국 민속박물관에 기증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나는 일본, 중국, 필리핀, 하와이의 민속 음악자료는 다소 모았지만 이밖에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터어키, 월남, 인도등지의 것은 하나도 구해 놓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유교 풍습에 젖은 탓인지는 몰라도 겸양지덕을 최대의 미덕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까닭에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것마저도 내세우지 못하고 파묻어 버릴 뿐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외국 문화를 무조건 찬양하는 편에 서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으니 이는 배외사상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열등의식 때문인지?
   여러분들은 어디까지나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란 긍지를 가지고 우리 문화를 올바르게 - 그리고 떳떳하게 선전하는 데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열등감을 가질 바에야 차라리 우월감을 가지고 외국 사람들을 대하기 바란다.
   우리들은 항상 찬란한 5천년 역사를 자랑하기도 하고, 더욱이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략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역설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이 두 가지는 조금도 내세울 일이 못된다. 차라리 수 많은 수난의 역사 속에서도 찬란한 문화, 빛나는 예술을 창조한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동양 3국에 있어서 우리나라가 교량적 구실을 한 결과 오늘날 중국의 문화와 일본의 문화는 공통점을 수 없이 발견할 수 있는 데 반하여 우리는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자랑할 줄도 아는 - 문화적 긍지를 가지고살아가는 진취적 민족이 되었으면 한다.

<월간 「밀물」 1980.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