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우리의 눈을 이웃에게

나  운  영

   『내가 죽을 때에는 내 눈을 시각 장애인들에게 바쳐 달라' - 세상에는 시각 장애인들이 수두룩한데 우리처럼 두 눈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일종의 사치(?)가 아닐까? 더욱이 두 눈을 무덤 속에서 썩혀 버리는 일은 혹시나 죄악(?)이 아닐까? 빛을 못보는 두 사람에게 내 눈을 이식해 주어야겠다. 스테레오 식으로 한 사람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 보다는 모노식으로 두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싶기 때문이다. 』- 이상은 1973년 한국일보에 발표했던 「미리 쓴 유서」 중의 일부이다.
   작년엔가 윤형중 신부님이 두 눈을 시각 장애인에게 주었다는 미담이 신문에 보도되었을 때 나는 나의 결심을 다시 한번 다짐했었다. 왜냐하면 나의 유서가 공약(空約) 아닌 공약(公約)이요, 그야말로 공약(恐約)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금년에 돌아가신 김명선 박사님은 온몸을 의학연구재료로 제공했다. 이 얼마나 거룩한 일인가…. 이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기 위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선생은 이미 생존시에 빛나는 업적을 수 없이 남기셨기 때문이다.
   위악자(僞惡者)란 말이 있다. 세상에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 이름을 내기 위해 양심 아닌 양심(兩心)을 가지고 남을 속이는 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것이 비록 '이유 있는 반항'일지라도 이는 위선자보다도 더 지탄을 받을 만한 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위악이란 교만에서 오는 행동이라고 말해도 좋지 않을 까? 우리는 먼저 '교만'을 버려야 한다. 특히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명을 다루는 자들에게 있어서 교만이란 금물이다.
   존경하는 장기려 박사님, 박요슈아 박사(재미교포) 같은 분은 환자를 치료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신다고 한다.
   '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소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입니다. 당신의 도우심 없이는 이 환자의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당신께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친히 고쳐 주소서….'
   이렇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환자를 돌볼 때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부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 이름 있는 사람이나 이름 없는 사람에게도 생명은 가장 귀한 것이다. 자기 자신의 생명도 귀하지만 남의 생명은 더욱 더 귀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겠다. 그러므로 의료 사업에 종사하는 의사, 간호사, 약사는 물론 제약회사의 종업원 여러분에 이르기까지 그 사명은 참으로 큰 것이다.
   끝으로 나는 여러분에게 두 가지를 권하고 싶다.
   첫째는 신앙 생활이요,
   둘째는 음악 생활이다.
   철저히 신앙 생활을 하며, 고상한 음악을 즐길 때 여러분에게 축복과 위로가 넘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 슈바이처를 본 받자!
   두 눈을 바친 윤 신부님, 온 몸을 바친 김 박사님의 거룩한 뜻을 우리는 칭송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과 뜻을 같이 할 용기는 없는가….

 <1982.9월 '유경'>

[편집자 주] 1993년 10월 21일 故 나운영 선생은 길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급작스럽게 소천하심에 그 남기신 유언을 지켜드리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