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애처기

나  운  영

   공처가인 나에게 갑자기 '애처기'를 쓰라고 하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결혼 주례를 설 때마다 공처가에 대한 풀이를 해주곤 한다. 즉 공처가에는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공처가(恐妻家)이다. 아내를 두려워하는 사람을 뜻한다. 둘째는 공처가(攻妻家)이다. 아내를 때리는 사람을 뜻한다. 셋째는 공처가(恭妻家)이다. 아내를 공경하는 사람을 뜻한다.

   나의 전공은 물론 작곡이지만 부전공(?)은 이두신어창작이다. 그래서 연고전(延高戰) 아닌 연고전(連苦戰), 약혼식(約婚式) 아닌 약혼식(略婚式), 단종애사(端宗哀史) 아닌 단종애사(斷種哀史)등등 수 많은 신어를 만들어 냈는데 아마 공처가(攻妻家)나 공처가(恭妻家)도 내가 제일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면 세가지 공처가 중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아내에게 과히 잘못한 일이 없으니 첫째는 아닐 것이 분명하고, 천성이 양순, 온화한 편이니 둘째도 아닐 것이 또한 분명하니 자연히 셋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처가(恭妻家)는 곧 애처가를 뜻한다. 그러나 나는 열정적으로, 동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편보다는 정열적으로, 정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편이다.
   악성 슈만과 클라라에 비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나의 예술가곡은 거의 대부분이 아내를 위해서 작곡되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신혼 시절에 「달밤」,「강 건너 간 노래」,「별과 새에게」,「가는 길」,「박쥐」,「당나귀」,「구혼」 등등이 쏟아져 나왔고 또한 이 곡들이 아내에 의해 초연되었고 그 때마다 내가 피아노 반주를 했었던 일을 회상할 때 이것만으로도 애처가가 넉넉히 증명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32년 동안 서울 성남교회의 성가대를 지휘했었다. 그런데 줄곧 아내가 반주를 맡아 했었고, 현재 2년째 개척 중인 운경 교회에서도 이 일만은 계속하고 있으니 - 이와 같이 부부가 합심해서 서로 도와 가면서 서로를 이해하면서 일을 해 나간다는 것도 애처하는 일이 아닐까….
   나는 결혼 초부터 아내에게 사회참여를 적극 권했었다. 즉 아내가 밥이나 짓고, 빨래나 하고, 아이나 기르고, 집이나 지키면 생의 보람을 찾을 수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첫째는 자기 전공을 살려서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고, 둘째는 교회 관계의 일, 유치원 관계의 일, YWCA 관계의 일 등 봉사 활동을 힘껏 하는 것을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이것도 아내의 재능과 개성을 살리도록 돕는 것이 되니 이 또한 애처하는 일이 아닐까….

   나는 결혼 주례 때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믿고, 도움으로써 아무쪼록  '민주주의적 가정'을 이루라"는 말을 해주곤 한다. 성경 말씀에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라고 되어 있는데 현대인으로서는 이 말에 대해서 무조건 복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성경 말씀을 주종 관계로만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부부는 항상 상대적인 관계이니 만치 어느 한편에 순종을 요구할 성질의 것이 못된다. 이상적인 부부 관계를 음악적으로 설명한다면 마치 소나타 형식에 있어서의 제 1주제와 제 2주제의 관계와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베토벤의 음악에 있어서의 남성적인 제 1주제와 여성적인 제 2주제, 또한 반대로 브람스의 음악에 있어서의 여성적인 제 1주제와 남성적인 제 2주제처럼 개성이 다른 부부가 제시부에서 서로 만나서 가정을 꾸미고, 발전부에서 모진 세파를 헤쳐 나가며 서로 돕고, 의지하고 살아가다가, 재현부에서 행복스러운 생애를 마치는 - 이상적인 모델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은 대위법적인 악곡에 있어서의 주선율과 대선율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토벤이나, 슈베르트, 브람스처럼 독신주의자(?)라면 모르되 남과 여가 한 마음, 한 몸을 이룬 이상에는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민주주의적 가정'을 이루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나는 중앙고보 재학 시절에 우연한 기회에 은사이신 이상훈 선생님(전 서울대 상대 학장)댁 앞을 지나다가 문패를 보고 놀란 일이 있다. 즉 선생님과 사모님의 이름이 나란히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40년전에 부부 문패가 달렸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나는 그 뒤로 오늘날까지 또 다른 부부 문패를 - 우리 집을 제외하고는 - 본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위에서 입버릇처럼  '민주주의적 가정'이란 말을 되풀이했는데 우선 외형적으로 나타난 가장 큰 본보기가 이  '부부 문패'가 아닌가 싶다.
  가정에서 어떤 정책을 세울 때 온 가족이 한 데 모여 자유로운 분위기 가운데서 의논을 한다거나 혹은 자녀들을 타이를 때 부부가 함께 - 같은 의견을 가지고 - 이야기한다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부 중의 어느 한 편의 의견에 따름으로써 혼선이 빚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민주주의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결국 이런 것이 한 가정에 있어서 '애처'의 표현이 될 수도 있는 일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예부터  '남존여비 사상'에 젖어 있어  '민주주의적 가정'이니  '부부 문패'라는 것 자체부터가 뭔가 이상한 느낌을 주게 되는 듯한데 이 남존여비 사상부터를 뜯어 고쳐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창부수란 말이나 - 그 보다도 부부(夫婦)라는 말 자체에도 뭔가 이상한 데가 있다. 그렇다고 굳이 부부(婦夫)로 바꿔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한글로 '부부'라고 썼을 때 더욱 자연스런 느낌이 든다. 부부란 Better Half 끼리의 만남이며 설령 1대 1의 존재라 하더라도  '1+1=2'가 아니라  '1+1=1'이 되어야 완전한 부부라 할 수 있는 것인데 이에 우월감 또는 열등감, 주인 또는 종이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끝으로 나는 좀 이상한 버릇이 있다. 즉 길을 걸을 때 아내와 나란히 길을 걷는 것보다는 대체로 한 두 발짝 먼저 걷기 때문에 늘 불평을 듣는다. 아마 좀 급한 성격 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길을 함께 걸으면서도 뭣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좀 빨라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면 높은 사람이 행차할 때 앞에서 '물러가라'를 외치며 설치는 사람처럼 나 또한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또는 아내를 안내하기 위해 세심하게 늘 신경을 쓰다보니 그만 습관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도 싶다. 나는 택시를 탈 때에도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앞 자리에 태우거나 그렇지 않으면 뒷자리 속으로 내가 먼저 들어가고 아내를 다음에 태우는 버릇이 있는데 이만 하면 애처기를 쓸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19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