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4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어         록

나  운  영

1. '민족성과 시대성을 떠난 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작품이라 할 수 없다.'
    '독창성은 새로운 리듬, 멜로디, 하모니 자체보다도 그 새로운 사용 방법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음악, 아카데믹한 수법에 근거를 두지 않은 새로운 수법은 이유 없는 반항이 되기 쉽다.'

<박재열 제3회 작곡발표회 프로그램 중에서, 1966. 11. 8>


2. 음악가의 직업은 다섯 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작곡가. 연주가. 평론가 그리고 교육가, 사업가.
    그 중 연주가는 지휘자와 성악가, 기악가 등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하나 베토벤을 예로 들어 본다 하더라도 그들은 모두가 작곡가. 연주가. 교육가를 겸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이 나라에서도 이 다섯 가지 중 몇몇을 겸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정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성악가나 기악가가 되려다 못 된 자들이 지휘자가 되는 일이 많은가 하면 반면에 작곡가가 되려다 못 된 자들이 평론가 행세를 하게 되는 수가 많음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작곡이나 연주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 자들이 교육에 종사하는 예가 많음을 발견케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니 이것은 확실히 모순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난 8월 30일 우리 음악의 위대한 선구자 홍난파 선생님의 제13주기 추도회가 열렸을 때의 일이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데 나는 죽어서 사업을 남기겠노라." 이것이 고인의 말씀이셨다고…. 사실로 홍난파 선생만이 작곡, 연주, 평론, 교육, 사업 등 이 다섯 가지를 완수하신 분일 것이다.
   이것을 볼 때 오늘날 우리들 중에는 너무 일찍 늙어 버리는 자가 많은 것만 같다. 일선에서 후퇴한 다음 후배의 앞길을 방해하기 위하여 시시비비를 말하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는 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해 주고 싶다.
  "다른 자를 음모, 중상할 정력과 정열이 있거든 그 정력과 정열을 자기 완성의 길에 쓰기를….

<국제신보 1954. 10. 10>


3. 항상 남의 뒤만을 쫓는 사람이 되지 말고 항상 남에게 뒤를 쫓기는 사람이 되라.

<1980. 4. 12>


4. 저는 1979년 8월 24일 밤 주님의 계시를 받고 찬송가를 매월 7곡씩 작곡하여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이 일을 꾸준히 실천해 오고 있는데 100곡 중 우선 52곡을 추려 『한국 찬송가 제 1집』을 내어 놓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사명으로 알고 - 손의 피가 마를 때까지 - 계속할 것입니다.

<나운영 작곡 『한국 찬송가 제 1집』 끝 말에서, 1980. 12. 7>


5.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우리가 서울 성남교회에 온지도 어언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세 자녀와 함께 대오 없이 성가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 믿음과 정열과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와 고락을 함께 해 주신 성가대원 여러분과, 우리를 사랑하고 아껴주신 교우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장기 집권(?)으로 말미암아 교회 발전에 본의 아닌 지장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면서도 서울 성남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과감하게 시도함으로써 우리 음악계와 교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데 미력이나마 이바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 대해 보람을 느낀다. 창립 33주년을 맞이하여 서울 성남교회와 성가대의 부흥을 열원한다.

 * 서울 성남교회 성가대에서 배출된 음악인 명단
              강석희   권영숙   김광복   김동환   김병규   김상태   김재희
              김현덕   김화자   나인용   나효선   노정숙   박수연   박인자
              박재열   박준상   백형자   사지형   서경숙   손지혜   송해섭
              송태옥   신재식   심경흠   안일웅   오인경   유승렬   이만방
              이삼은   이상철   이성만   이은화   이찬해   이혜심   이현숙
              이혜정   장옥자   정부기   조병옥   조정욱   조소란   전은명
              최동선   최인달   최종진   하재은   황인자   황희숙

 나운영 장로, 유경손 집사 성가대 근속 30년 기념 음악 예배
 <나운영 성곡의 밤>의 프로그램 인사 말씀, 1978.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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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나는 과거에는 이론을 앞세우고 작곡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념을 앞세우고 작곡을 하게 되었다. 즉 과거에는 이론에 구속을 받으면서 작곡했으나 지금은 이론에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작곡할 수 있게 되었다.

<제 7회 신작 찬송가 월례 봉헌 예배 때에 한 말, 1980. 5. 25>


7. Gustav Mahler는 남의 작품을 모방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작품을 표절했다.

<1980. 5. 24>


8. 저는 원래 눈물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한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첫째는 참회의 눈물이요, 둘째는 기쁨의 눈물이요, 셋째는 감사의 눈물입니다.
   10. 26이후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유행어가 생겼습니다. '한다면 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운경교회 설립은 제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연세대 복직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을 때 저는 새로운 결심을 했습니다.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다시 오라고 할 땐 언젠가? 이제 복직한다 해도 7년 후에는 정년이 되는데 가서 무엇하나…."
   저에게는 두 가지 한이 있습니다. 첫째는 모태로부터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고, 둘째는 어려서부터 유치원을 다니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운경교회를 세우고, 운경 선교신학교를 세워 교회 음악 지도자와 유치원 교사와 주일학교 교사를 양성하렵니다.
   저는 교회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위해 지금까지 노력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운경교회를 통해서 이 운동을 더욱 펼쳐 나갈 생각입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 사람들이 참다운 한국 교회 음악을 들으려면 반드시 운경교회를 찾아 올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운경교회 창립예배 때 말했던 광고 요지, 1980. 3. 2. 낮 3시>


9.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란 말이 있다. 비록 몸은 늙었어도 마음만은 젊다는 말이다. '심로신불로(心老身不老)'란 말이 있다. 마음은 늙었는데도 아직 몸은 젊다는 말이니 뭔가 잘못되었나보다. 그런데 운경합창단은 국내는 물론 동남아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줄기차게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으니 마음도 늙지 않았고 몸도 늙지 않았나 보다. 이를 두고 심불로신역불로(心不老身亦不老)라고나 말해 둘까….

<운경합창단 제 13회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 중에서, 1982. 11. 20>


10.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할 때 현실도피야말로 비애국적인 사상으로 단정할 수 있으나 한편 '예술을 떠난 현실참여'도 우리는 배격하지 않을 수 없다. 오직 '예술을 통한 현실참여'만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인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인용 작곡발표회 프로그램 중에서, 1967. 7. 3>


11. 우리 음악인들은 책읽기와 글 쓰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그 까닭은 여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귀찮기 때문인가 보다.
   이와 같이 책읽기와 글 쓰기를 게을리 하게 되면 나중에는 지식은커녕 상식조차 부족하여 자기 전공밖에는 모르는 '쟁이'로 전락하게 되고 또한 자기 예술을 설명, 옹호하기 위한 글조차도 쓰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음악연세 제 7호 축사 중에서, 1973. 12. 20>


12. '창간호 겸 폐간호'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발표회 중에는 첫 발표회이자 마지막 발표회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경제적 타격 때문에 계속이 안되는 - 원통한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나 그 보다는 공부한 것이 없거나, 정열과 정력이 부족한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닐런지…. 그러나 여기에 의욕적인 학도가 있으니 최동선군은 재학 시절에 첫 발표회를 갖는 데에 큰 의의가 우선 있다고 본다.
   작품을 쓴다는 것은 생리적 현상에 불과하다.
   쓰지 않고는 못배겨 토해 내는 것이며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 아닐까?
   작품을 쓰는 데는 가족계획(?)이란 해당도 되지 않는다.
   작품은 꾸준히 쓰는 동안에 - 잘못해서 걸작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최동선 작곡발표회 프로그램 중에서, 1967. 5. 26>


13. 나는 세종대학 대학원 음악과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음악 대학 졸업생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의 대학원 음악과'를 만들겠습니다. 즉 각 대학에서 잘못 배운 것을 재교육시킴으로써 '올바른 작곡 이론의 확립'을 위해 '음악학의 정립'을 위해 힘 쓸 것입니다.   금년 대학원 전기 입시는 끝났으니 금년 후기부터는 실력자를 다수 입학시켜 이로써 앞날의 음악교육 혁신을 위해 백의종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중략) 내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나의 대학 교수 생활 40년의 총 결산을 뜻있게 마치려는 것입니다. (후략)

<안일웅 선생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1981. 2. 11 아침>


14. '음악 이전이란 말이 있다.' 제 아무리 연주 기술이 좋다 하더라도 해석이 좋지 못하면 그것은 음악 이전이라 할 수밖에 없다.
   '기술 이전이란 말이 있다.' 제 아무리 곡의 내용이 충실하다 하더라도 작곡 기술이 미숙하면 그것은 기법 이전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음악 이전과 기술 이전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는 '젊은 사자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으련다.

<제1회 5인음악회(공영훈, 홍사은, 최은실, 홍경옥, 김면희)의 프로그램 중에서, 1978. 5. 19>


15. 토착화란 뿌리를 찾자는 것, 외국 문화를 우리에 맞게 수용하자는 것,
      외국문화의 무비판적인 수용, 모방은
      낮은 코를 높이고,
      쌍꺼풀 수술을 하고,
      노랑머리로 물들이고,
      최신 유행만을 뒤늦게 따르는 것과 같다.

<1980.12. 7>


16. 고유의 문화, 고유의 예술이 없는 나라는 야만인의 나라요, 미개한 나라이다. 외국 찬송가만을 즐겨 부르는 것이나 자기 나라의 찬송가가 없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내가 찬송가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6·25사변 중이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살려 주신다면 앞으로는 교회음악의 토착화와 현대화를 위해 몸 바치겠다고 간절히 기도했었다.

<1979. 11. 4>


17. '선토착화 후현대화'는 물론이고 '토착화는 먼저 Rhythm, Melody에서부터, 현대화는 먼저 Harmony에서부터'가 나의 지론이다.

<『현대화성론』(세광음악출판사 발행) 서문 중에서, 1982. 12. 6>


18. 사필귀정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모략과 중상을 받더라도 때가 이르면 모든 것은 밝혀지는 법이란 뜻이다. 세상을 살아 가노라면 억울한 일을 당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써 악을 이기라'(로마서 12장)는 말씀을 되새기게 된다.
   '가짜 예수', '적 그리스도', '위선자'가 득실거리는 오늘날 정과 사를 제대로 분간하기조차 힘들어져만 가니 말세가 가까워 오는 징조인가 보다.
   사필귀정이니 보복하려 들지 말고 사랑으로써 참고 기다리라.

<월간 「중앙」 1975. 5>


19. 나는 고독을 사랑해서 그런지 산은 혼자 다니는 것이 좋고 더욱이 새벽에 비를 출출 맞으며 걷는 것이 취미이다. 건강도 건강이지만 속세를 떠나 머리를 식히기 위해 대기오염은 물론 도시의 소음과 음악 아닌 음악(淫樂)으로 말미암은 공해 아닌 공해(恐害)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수영 아닌 수중산보 밖에는 못하는 데서 오는 - 하나의 반발로서 또는 산을 정복하기 위해서 보다는 산에 정복당하는 데서 오는 행복감을 맛보기 위해 나는 가끔 등산을 한다. 산은 나에게 무한한 교훈을 안겨 준다.

<1972.>


20. 서양음악에 중독된 우리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나는 앞장서련다.

<1979. 10. 8>


21. 창극을 정화하라

   일제 시대부터 6.25 사변 전까지만 하더라도 흥행에 있어서 소위 악극이 대중의 인기를 독점하고 있던 것이 요즈음에 와서는 창극이 흥행계의 패권을 견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허기야 우리 민족이 이처럼 내 나라 고유 음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극을 생활화하게 끔 되었다는 사실은 대단히 반가운 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창극은 창극이로되 이것이 재래의 창극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는 점 - 환언하면 소위 악극적 요소를 풍부하게 도입시켜 흥행 본위의 '악극적 창극'이란 새로운 형태의 흥행물을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는 점을 나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결국 악극 팬을 창극이 마저 흡수해 버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을까?


   창극은 세속적 그랜드 오페라가 아니었던가? 창극단은 마치 우후죽순격으로 많이 생겨도 결과에 있어서는 간판만 갈아 놓은 형편이고, 멋들어진 창을 한마디 제대로 들을 수 없는 형편이다. 신작 창극도 물론 좋으나 춘향전, 심청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단체가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창극은 일단 창극 본연의 형태로 환원되어야 할 것이며 연극에 중점을 둔 - 오늘날의 창극에서 음악 중심의 창극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위 악극이 바그너의 악극과 다른 것과 같이 오늘날의 신작 창극도 재래의 창극과 그 예술성에 있어서 전연 논할 바가 못됨을 생각할 때 창극의 정화도 또한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임을 재인식하게 된다.

<월간 「새벽」 1954.  9월호>


22. "현악기에도 건반장치가 있었으면---."
   "중음주법이나 하모닉스주법 같은 것은 차라리 없었으면---."
   언젠가 나는 실내악 연주회장에서 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지난번 명곡사 주최의 <살롱 음악회>에서의 신상철, 김원복 양씨의 연주를 듣고 나는 이 말을 취소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을 무한히 기뻐했다. 물론 옥의 티를 운운할 수도 있겠으나 독학(?)으로 이만치 좋은 연주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놀라운 성과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평론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슬프게 생각한다. 신상철씨의 앞날에 대해 그가 감당키 어려울 만치 큰 기대를 갖고 있는 사람은 비단 나 혼자 뿐이 아니리라.

<1954. 6 >


23. "If I do not practice for one day I will hear it.
       If I do not practice for two days my friends will hear it.
       If I do not practice for three days the audience will hear it."
  이는 당대의 명 피아니스트 겸 관현악 지휘자였던 Hans von Bulow(1830~1894)의 명언이다. 나는 이에 사족을 달고 싶다.
  '만약 내가 하루 동안 공부하지 않으면 온 동네가 알게 되고,
   만약 내가 이틀 동안 공부하지 않으면 온 나라가 알게 되고,
   만약 내가 사흘 동안 공부하지 않으면 온 세계가 알게 될 것이다.'
   유능한 예술가 육성을 목표로 하는 우리 예술대학의 학생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1984.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학회지「예향」 창간호 격려사 중에서>


24. '이기고 지는 것' 보다는 '지고 이기는 편'을 나는 택하고 싶다. 나는 무저항주의자이다. 최후의 목적은 승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지구력, 저력이 필요하다.

<1979. 10. 23>


25. 주체성이란 '뿌리를 찾자'는 이야기이다.

<1979. 10. 13>


26. 천의 얼굴을 가진 작곡가가 되어야겠다.

<1979. 12. 3>


27. 상식과 지식은 다르다.
   우리나라 음악 학도들은 음악 상식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상식은 물론 지식을 몸에 지닌 음악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1979. 9. 18>


28. 한국 문화예술 진흥원에서 지급하는 공연 지원금은 우리 작품의 초연 때에 한해야 한다.

<1976.>


29. '음악 이전'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고등 기법을 구사했다 하더라도 작품 내용이 공허, 유치, 저속해선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기법 이전'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의욕적인 작품을 쓸려고 하더라도 기법이 미숙해서는 좋은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음악 이전'과 '기법 이전'을 극복하려는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요즈음 국악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 크게 논의되고 있다. '민족적 아이디어'를 '현대적 스타일'로 표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책이 세계성을 띤 민족음악을 창조하려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작곡법』(민중서관 발행) 서문 중에서, 1962. 11. 22>


30. 무릇 작품이란 전적으로 영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즉 어떤 기본 소재가 머리에 떠오르면 그것을 가지고 갖가지 주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기본 소재가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작곡 과정을 추리할 수 있다.
  음악분석법이란 Rhythm, Melody, Harmony, Tone Color, Form을 분석함으로써 "What" - "How" - "Why"를 밝혀 내는 학문이므로 작곡가나 연주가가 되려는 학도는 물론이고 음악 교사, 음악 애호가에게도 필수과정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음악분석법』(세광음악출판사 발행) 서문 중에서, 1981. 11. 29>


31.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민족음악 수립은 양악 이론의 한국적 섭취와 국악의 이론적 체계화, 그리고 음악 대중화 운동 전개에 있다. 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양악 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인 화성학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화성학』(민중서관 발행)의 서문 중에서, 1956. 6. 4>


32. 신학에서 축자영감설(逐字靈感說)을 주장하는 것과 같이 음악에서도 악곡을 분석해 보면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것을 깨닫게 된다. 음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해서 듣고, 연주해야 하고, 또한 그 작품을 통해서 작곡기법을 악성에게 직접 배울 수 있다.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우리의 스승은 악성 Bach, Beethoven, Wagner, Debussy, Schonberg, Stravinsky이다.

<1979. 10. 16>


34. 아악, 향악은 정중동이요, 속악은 동중정이다.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