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 미출판

나의 비법

나  운  영

   '84년 단골손님 칼럼에 「책난봉」이란 글을 썼던 일이 있는데 3년만에 또 쓰게 되니 아닌게 아니라 단골손님인가 보다.
   독서의 계절을 앞두고 책을 고르는 법 ·사는 법 · 읽는 법에 대한 나의 비법 (?)을 공개코자 한다.
   첫째로 책을 고를 때에는 항상 먼 장래를 예견해야 한다. 즉 당장 필요한 것만 사려 들지 말고-당장은 필요가 없어 보이더라도-언젠가는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책이라면 미리 사두어야 한다. 좋은 책은 아무때나 살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학교 1학년 때에 이미 안톤 · 베베른의 현악3중주의 악보를 샀었다. 내 친구들이 하이든이나 베토벤의 교향곡을 살 때에 말이다. 흔한 책은 좀 나중에 사는 한이 있더라도 희귀한 것을 먼저 사야한다. 또 책이란 계통적으로 사야 한다. 기초도 모르면서 첨단이론(尖端理論)에 관한 것만 모아서야 되겠는가? 책을 읽는데 순서가 있듯이 책을 사모으는데도 순서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책을 살 때에는 먼저 값에 유의해야 한다. 같은 책이라고해서 반드시 값이 같은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외국책인 경우 달러나 엔의 시세변동에 따라 값이 차이가 생긴다. 나는 일본에 가서 책을 살 경우 한 책방에서도 같은 책의 값이 서로 틀리는 것을 발견하게 된 후로는 또 다른 책방과 비교해 본 다음에야 사는 습관이 생겼는데 - 좀 귀찮기는 해도-이렇게 해야만 기분이 좋다. 왜냐하면 다른 책을 한권 더 살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책을 읽을 때에는 절대로 처음부터 감격하여 빨간 연필로 줄을 그을 것이 아니다. 책이란 한번 읽고 버리는 것이 아니고 또 한번 읽어서 모두 이해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예-최소한 세번은 읽을 각오를 하고-읽되 처음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연필로 괄호를 치고,두번 읽을 때에는그 괄호친 부분만을 읽으면서 그중에서도 더 중요한 부분에 다시 작은 괄호를 치고, 세 번 읽을 때에는 다시 괄호를 축소시킨 다음에 카드에 메모를 해둔다. 그러면 무엇에 관한 것은 어느책 몇 페이지에 있는지를 당장에 알수 있기 때문에 허둥지둥 책 한권을 몇번이고 뒤적거리지 않아도 된다.
   또한 책이란 늘 비판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일단 의심(?)을 품으면서 읽는 것이 도움이 될때가 많다. 책이란 빌려주는 법도 없고, 빌려보는 것도 아니다. 내 책을 가진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항상 스승을 내곁에 모시고 사는 것과 다름이 없으니 말이다.
   골빈당과 백치미녀가 득실거리는 이 사회는 점점 병들어가고만 있다. 스포츠건 예술이건 모두가 두뇌 싸움이다. 두뇌 싸움에서이기려면 우선 책을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1987. 4호 책방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