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집 5 미출판

대구탕 사건

나  운  영

   슬플 때에 울고, 기쁠 때에 웃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쁠 때에도 눈물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을 수없이 목격했으니 말이다. 그러고보면 눈물이란 슬픔이나 기쁨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나보다.  
   대체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눈물이 좀 많은가 보다. 영화나 연극을 봐도 남성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별로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여성이 단연 눈물이 많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같다. 왜냐하면 남성은 흔히 속으로 울기 때문이 아닐까 ? 

   27년전 어머니의 장례식 때의 일이다.  웬일인지 나는 도무지 눈물이 나오지 않아 남보기에도 좀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장지에서 돌아오니 어디서 그렇게 계속 눈물이 쏟아지는지‥‥ 너무 슬플 때에는 아예 눈물이 말라버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여섯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우리 어머니는 한마디로 말해서 무서웠다. 그렇다고해서 철저하게 감독하거나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다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크게 꾸지람을 하셨다.    
   어머니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절대로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소위  태평양전쟁 때 방학이 끝나 다시 일본으로 떠날 때에도 겉으로는 태연스러우셨지만 뒤돌아서서 몰래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길을 떠날 때 눈물을 보이면 불길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리라. 

   어머니께서 세상 떠나시기 2년전 어느날,  음식점에서 '대구탕'을 대접해 드린 일이  있었는데 어찌나 맛있게 찬찬히 드시는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때 나는 농담(?)삼아 이런 이야기를 해 드렸다.
   "대구탕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대구엘 갔더니 붉은 벽돌 굴뚝에 '대구탕'이라고 써 있기에 이집이 대구에서 대구탕을 제일 잘하는 집인가보다 생각하고 들어갔더니 그만 목욕탕이더라···"
   "막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눈물을 흘리시면서 활짝 웃으시는데 그때의 모습이 영 잊혀지지 않았다. 이제부터라도 자주 대구탕을 대접해 드려야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나의 마지막 효도(?)가 되어버릴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 어머니는 조용한 성품이어서 늘 감정을 노출시키지 않으셨지만 대구탕 사건(?)이 있은 뒤로는 가끔 그때의 일을 회상하시면서 혼자 행복해 하셨다.
   들려오는 바에 따르면 집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그때의 이야기를 하셨다고 하는데 생존시에 효도를 못다한 것을 뒤늦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나 때문에 속상하셔서 눈물을 흘리신 일이 왜 없었을까만은 대구탕 이야기로 나에게 드디어 눈물을 보이셨던 그 기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또 그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나는 눈시울을 붉히는 일을 되풀이하곤 한다.

<1988. 11월호 월간 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