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감상 해설 HLKY _01 (1955년 3월 1일)

    이 글은 나운영이 기독교방송에서 12회에 걸쳐 국악감상해설을 한 원고입니다.
아쉽게도 12번째 원고는 찾을 수가 없었고, 1955년도에 라디오 생방송을 위해 작성한 글이라 현재에 맞게 일부 수정했음을 밝혀둡니다. 아울러 이 국악감상 해설에 사용된 음원은 찾을 수가 없었고, 더 더욱이 실제 스튜디오에서 직접 생방송으로 연주한 음원은 확인할 수 없어 다른 음원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오늘부터 외람되게도 양악인(洋樂人)인 제가 국악감상의 해설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양악인이 국악해설을 한다는 것이 기이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그보다도 한국사람인 제가 서양악인 행세를 한다는 것이 도리어 기괴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에는 교회계통으로 들어온 서양식 음악과 일제가 퍼뜨린 일본식 유행가, 특히 8·15 해방 이후 더욱 그 세력이 커진 미국식 Jazz 음악 등의 등쌀에 우리 고유의 음악은 거의 존재가 없다시피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한국 백성인 우리가 한국음악을 모르고, 한국음악을 천대하고 무조건 서양음악만을 숭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기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멸시한다고 해서 국악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요, 또한 멸시할 권리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남의 나라의 음악은 즐기면서 내 나라의 음악을 배격하는 까닭이 어디에 있느냐하면, 그것은 첫째로 국악을 잘 모르는 까닭이며, 둘째로 국악을 배우지 못한 까닭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양악인은 국악을 모르고, 국악인은 양악을 모르는 까닭에, 다같이 민족음악 수립을 논하기는 하면서도 서로 힘을 합하지 못하므로 빛나는 발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모순을 제거하고자 - 양악을 잘 알면서도 국악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이제부터 여러분과 같이 국악을 논해 보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국악해설이란 대체가
    국악 만의 해설,
    국악곡의 해설,
    국악기의 해설로 끝난 감이 적지 않았다고 저는 봅니다.

    이러한 해설방식은 국악곡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간접적인 도움은 물론 되겠지만 국악곡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직접적인 도움은 그다지 많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추상적인 해설로는 여러분께서도 만족을 못하셨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되도록 음악의 5대요소, 즉 리듬, 선율, 화성, 음색, 형식에 의한 분석적 감상법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또한 국악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흔히 아악이나 산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는 듯 하나, 저로서는 될 수 있는대로 속악에서부터 향악, 당악, 아악 등 거꾸로 설명해 드릴 계획이고, 또한 무엇보다도 먼저 장고(杖鼓) 장단에 의한 감상법부터 설명해 드릴려고 합니다.
    이것이 가장 우리와 친근미가 있고 흥미가 있는 방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매주 화,목,토 이 시간에 이러한 새로운 방법에 의해 국악을 해설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은 국악에 귀를 익히는 의미에서 몇가지 음악을 해설 없이 틀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이 음악을 통해서 양악과 다른 점. - 좀 더 어려운 말로 한다면 민족적 요소의 유형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음악의 멋을 발견하려고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먼저 들으실 곡은 가야금 산조로  「중모리」입니다.

    가야금 산조   「중모리」

    판소리나 가야금 산조에는 진양조, 중모리, 자진모리 등의 장단이 있습니다.

    다음 들으실 곡은 정악으로 영산회상 중 9번째 곡인  「군악(軍樂)」입니다.

     영산회상 중  「군악」

     가곡과 가사, 시조, 민요- 국악 가운데 성악곡은 이 세가지가 있는데, 같은 성악곡이라도 시조에는 시조의 맛이 있고 민요에는 민요의 특색이 있고, 가곡에는 가곡의 멋이 있습니다.
먼저 민요로  「강강수월래」를 들어보십시오.

    민요  「강강수월래」

    다음으로 시조 가운데 평시조를 감상하시겠습니다.

    평시조  「녹양이」

    세번째로 판소리 가운데 「춘향고절가(신연맞이)」를 감상하겠습니다.

    판소리  「춘향고절가(신연맞이)」

    이것이야말로 민족 오페라입니다.

    가락의 멋,
    장단의 멋,
    악기의 음색 등
    서양음악과 다른 점과 중간에 박자가 달라지는 것도 느끼셨을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국악에 흥미를 못 느끼시던 분이나, 국악을 까닭없이 덜 좋아하시던 분이나, 국악을 천하게 생각하시던 분, 더욱이 서양음악에 비하여 국악을 원시적 음악이라 생각하여 전연 관심을 두지 않으셨던 분들도 앞으로는 국악에 귀를 기울이시게 될 줄 믿습니다.
    다음부터는 본격적인 국악 해설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