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감상 해설 HLKY _02 (1955년 3월 3일)

   이 글은 나운영이 기독교방송에서 12회에 걸쳐 국악감상해설을 한 원고입니다. 아쉽게도 12번째 원고는 찾을 수가 없었고, 1955년도에 라디오 생방송을 위해 작성한 글이라 정리가 안 돼 일부 수정을 했으며, 기독교 방송에서 한 해설이라 종교적 관점이 다소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아울러 이 국악감상 해설에 사용된 음원은 찾을 수가 없었고, 더 더욱이 실제 스튜디오에서 직접 생방송으로 연주한 음원은 확인할 수 없어 다른 음원으로 대체하였습니다.

 

    오늘은 국악감상의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국악에 대한 귀를 익히시게 하는 의미에서
가야금 산조 중에서 「중모리」와 정악으로 「군악」과 민요로 「강강수월래」, 시조 중에서 「평시조」와 판소리 중에서 「춘향고절가(신연맞이)」를 들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방송국에서 국악이 들리게 된 것을 기이하게 생각하시는 분이 있는 듯 해서 잠깐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악이라면 광대나 기생 만이 부르는 것이고 술 좌석에서만 불리워지거나 술 마시며 듣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좁은 의견입니다. 또 한편 20세기 문명인이 국악을 즐긴다는 것이 극히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나 또는 골동 취미,국수주의처럼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으나 이 또한 인식 부족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소위 서양의 순수음악 만을 숭상하는 나머지 서양의 건전한 경음악을 무조건 배격하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국악 가운데서도 아악이나 당악,향악 만을 숭상하고 속악을 천시하는 태도도 확실히 그릇된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국악 감상에 있어서 아악이나 시조를 먼저 들려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것은 마치 현대인에게 중세기의 음악을 들려주는 것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고학이나 음악역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처럼 현대적이 아닌 음악을 강요하는 것이 도리어 역효과를 내는 것이 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있어서 겨우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을 실망케하는 일이 만에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지도하는 방법과 순서가 잘못된 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악이나 시조를 처음으로 들을때에는 변화가 없어 따분하고 길이가 너무 길고 속도가 느려서 맛을 느낄수 없을지 모르겠으나, 속악계통의 곡을 많이 듣다가 다시 들어보면 그 깊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국악을 들으실 때 먼저 주의하셔야 할 점을 몇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는 음의 조율에 대한 문제입니다.
    양악에서는 평균율을 사용하고 있는데 비하여 국악에서는 순정율에 거의 가까운 조율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균율로 된 피아노로 국악의 선율을 연주해 본다면 그 맛이 반감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전연 다른 맛이 나게 됩니다. 따라서 국악의 특색의 하나인 순정율에 가까운 조율법에 의한 음계에 관심을 두시고 선율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조율법과 선율에 주의하시면서 대금독주로 「이별가」를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대금독주  「이별가」

    두 번째 문제로는 장단입니다.
    서양음악에 많이 나오는 왈츠 장단이나, 탱고, 룸바, 폭스트로트, 부기우기와는 전연 다른 독특한 장단인 굿거리, 타령, 도드리 등의 장단, 그 밖에 판소리나 산조 장단, 시조 장단, 가사 장단, 가곡 장단 등등을 잘 기억하시고 어떤 음악이든지 들으실 때에 저절로 무릎을 칠 수 있게끔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요를 왈츠 장단으로 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국악을 들으실 때에 장단의 종류와 장단의 변화를 기억하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굿거리 장단에 유의하시면서 「취타」를 들어보십시오.

    「취타」

    그다음 세 번째 문제는 화성입니다.

    대체로 국악에는 서양음악처럼 화성이 뚜렷하지도 않고, 곡에 따라서는 화성이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합주에 있어서 단연(?) 어떤 선율에 대하여 대체로 각 악기가 Unison으로,즉 같은 선율을 연주하게 되는데,이 때에 간단한 수식을 가해서 합주를 하게 됩니다.
이것을 전문어로는 Heterophony라고 합니다만 이것은 원시상태의 화성법이라고 하기 보다는 원시상태의 대위법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서양음악이 대체로 입체적인데 비하여 국악은 평면적입니다.
그러므로 화성적인 것 보다는 대위법적이라 할 수 있으며 그보다도 오히려 선율과 장단 만이 중요시된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음악에 서양의 고전 화성인 3화음 같은 것을 그대로 붙이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저는 단언하고 싶습니다.

    국악에 있어서 화성에 관심을 갖지 않고 들으시는 것이 가장 상책일 것이며, 좀 더 전문적으로 들으시려면 무반주 선율에 내포된 화성을 의식하시거나, 또는 마치 우리가 중세기의 서양음악을 들을 때와 같이 화성이 없는 데에 더 큰 매력을 느끼시면서 들으시는 것이 더욱 현명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화성에 유의하시면서 영산회상 중에서 「타령」을 들어 보십시오.

    영산회상 중  「타령」

    국악기가 서양악기에 비하여 그 제조법이 과학적이 아닌 것이 많기는 하지만 그 음색이나 주법에 있어서 서양악기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대금은 서양의 Flute이나 Clarinet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며, 거문고나 가야금처럼 현을 손으로 눌러서 기묘한 가락을 만들어내는 - 또는 기묘한 음정을 만들어 내는 악기는 서양악기 가운데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국악을 감상하시는데 있어서 각 악기의 음색에 대해서 관심을 두시고 들으실 것이며 아울러 악기편성법 - 가령 예를 들면 대금과 단소로 합주할 때에 어떤 음색이 되는 가에 대해서 귀를 기울이시며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음색에 유의하시면서 아악 「장춘불로지곡」을 들어보십시오.

    아악  「장춘불로지곡」

    이번에는 가야금 산조 「진양조」를 들어보십시오.

가야금 산조  「진양조」

    끝으로 악곡형식에 대한 것인데 아직까지 제가 알기에는 서양음악에 있어서의 Rondo 형식이나 변주곡 형식과 흡사한 것은 있으나 그것도 전연 같은 것은 아니고 그 밖에 Sonata 형식이나 Fugue 형식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시 서양음악과 형식이 다른 독특한 형식을 머리 속에서 분석하시면서 들으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형식에 유의하시면서 가곡 중에서 편락 '나무도'을 들어 보십시오.

    가곡  「편락」  '나무도'

    이상 다섯가지 즉 서양음악과 다른 조율법에 대한 선율과, 그 다음으로 리듬과, 화성, 음색, 형식 등을 먼저 분석적으로 감상하시는 방법이 가장 알기 쉬우실 줄로 생각됩니다.

    오늘까지는 국악감상에 대한 극히 상식적인 말씀만을 드렸고, 다음 토요일부터는 우선 타령 장단으로된 곡을 (실제로 장고와 저로 연주해 드리며) 해설하겠습니다.